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영화·애니

이 이란 여자의 삶이 끔찍한가
우린 다르다 안도하고 싶겠지만…

등록 2012-06-25 18:53

여성학자 정희진씨가 본 영화 ‘더 스토닝’
몇 년 전 인터넷을 떠들썩하게 했던 탈북 여성의 현실을 묘사한 동영상이 있었다. 너무 끔찍해서 일각에서는 남한의 보수 세력이 만들었다는 유언비어까지 돌았다. 어쨌든 18년간 가정폭력을 상담해온 내게는 익숙한 장면이었다. 처음 언뜻 봤을 때는 한국의 가정폭력 보도인 줄 알았다. 이처럼 사회(관객)의 인식에 따라 텍스트 수용 방식은 달라진다.

영화 <더 스토닝>은 1986년 이란의 평범한 마을에서 발생한 실화다. 네 남매를 둔 중년 남성이 14살 여성(14살 차이나는 여성이 아니다)과 결혼하기 위해 아내(소라야)를 간통녀로 조작해, 마을사람을 규합하여 투석형(投石刑)에 처한다. 돈 들이지 않고 이혼하기 위해서다. 남성연대의 위력은 대단했다. 소라야는 몸의 절반이 땅에 묻힌 채 자신의 아버지, 아들, 남편, 이웃이 순서대로 던진 돌팔매질에 사망하고 그날 밤 사람들은 축제를 벌인다.

남성의 명예를 지키기 위한 ‘명예 살인’(honor killing)은 지금도 행해지고 있다. 여성이 간통이나 연애에 연루되어 가족의 명예가 ‘더럽혀지면’ 남자 친족은 여성을 살해하여 ‘피해자’로서 자신의 명예를 회복한다. 대개 성문법상 불법이나 관습적으론 합법이며 전통으로 여겨진다. 투석 장면은 마지막에 나오고 그 전에 마을 사람들의 일상이 묘사된다. 종일 일하는 여성들, 빈둥거리는 남성들, 말끝마다 알라신을 들먹이는 사람들. 모든 장면이 ‘자연스럽다’.

여성학자 정희진
여성학자 정희진
명예 살인만이 아니다. 황산 테러, 신부 불태우기, 지참금 살인, 음핵 절개, 아내 순장(殉葬)…. 사회마다 여성에 대한 폭력은 다양하다. 편안한 영화는 아니었지만 내겐 그다지 충격적이지 않았다. 차이가 있다면 내가 목격한 폭력은 안방에서 일어난다는 점이다.

우리 사회의 가정폭력이나 여아 낙태 문제가 영화로 만들어져 전세계에 방영된다면 <더 스토닝>의 반응과 비슷할 것이다. 미국이나 유럽의 성폭력이나 인신매매도 잔인하긴 마찬가지지만, 서구는 여성 문제 외에도 정치·범죄·농업·경제·문화 등 다양한 사회모습이 보여지기 때문에 여성 폭력이 사회의 일부분으로 인식되지만 ‘후진국’의 여성 현실은 그 사회의 미개한 본질로 간주된다.

누가 말하는가보다 누가 듣는가가 중요하다. 이 영화의 경우 내용보다 영화의 효과, 곧 관객의 반응이 ‘진짜’ 정치학이다. <더 스토닝>에서 가장 의미심장한 대사는 “내 목소리를 가져가라”인데, 숨겨진 범죄를 세상에 알려달라는 외침을 들은 사람이 가져야 할 윤리적 태도는 무엇일까.

현실의 재현은 종종 현실을 대상화시켜 현실로부터 인간을 분리시킨다. “우리는 아니다”라는 안도감을 느끼거나 마치 우리에게는 일어나지 않는 사실처럼 ‘충격’만 받는 것이다. 심지어 이란 사회에서도 이런 일은 ‘시골’에서나 일어나는 일로 치부하는 경우가 많다.

유대인 학살은 근대성의 모순이고 돌팔매질은 봉건적인 관습인가? 과도한 다이어트로 사망하는 서구 여성은 차도르를 둘러야 하는 여성보다 더 해방되었는가? 이는 오래된 논쟁이다. 이슬람(아시아·아프리카…) 여성의 폭력 현실을 ‘비서구’ 사회의 야만성의 상징으로 인식한다면, 그건 새로운 식민주의다.

<한겨레 인기기사>

‘망언제조기’ 구로다, “위안부 소녀상은…” 또 망언
유시민 “강기갑 낙선하면 진보당 국민에게 버림받을 것”
오늘 저녁은 배우 한가인과 술 한잔?
‘나가수’ 핵폭탄 국카스텐, 시청자를 홀리다
정읍서 여성 토막살인 사건…용의자는 60대 치매 남편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