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개의 문>의 한 장면.
[토요판] 김성윤의 덕후감
오늘날 우리는 적대가 사라졌다고 상상하고, 따라서 이데올로기 등등에 대해서도 더이상 언급하지 않는다. 게다가 이런 상황에 대항할 만한 언어도 어느새 시효를 마감한 듯하다. 달리 말해 우리에겐 주어진 언어가 별로 없다. 마치 영화 <두개의 문>에서 용산참사의 ‘진실’을 입증할 만한 증거들이 체계적으로 그리고 외설적으로 사라졌다고 증언했던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언어가 부재해서 싸움이 곤란한 상황이라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내가 이 영화를 권하는 이유는 어떤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거나, 따라서 현 정권을 비판해야 한다는 데 있지 않다. 이 영화에는 그런 단순한 차원을 넘어서는 한가지 미덕이 있다. 적대가 소실됐다고 상상되는 세계에서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사유할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의 문제와 관련한 것이다.
영화는 인터뷰를 참고하되 주로 용산참사 재판기록과 경찰 증언처럼 주어진 언어를 재구성하는 작업으로 도배되어 있다. 혹자는 철거민들의 이야기를 담지 못했다고 비판하기도 하고, 현장에 관한 천착이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평가는 이 영화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는 자기고백이 아닌가 싶다. 왜냐하면 이 영화는 분명 어떤 ‘비판’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놀랍고도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점은 이 비판이 철거민 대 공권력이라는 프레임을 철저히 파괴한다는 데 있다. 철거민 대 공권력, 혹은 철거민 대 용역이라는 프레임은 우리에게 어떤 곤란을 자초할 뿐이다. 때때로 이런 프레임들은 정의라는 이름으로 약자를 특권화하는 우를 범하게 한다. 그리고 불의라는 이름으로 강자에게 악역을 지운다. 하지만 그렇기만 할까.
우리의 사유가 한계에 다다르는 상황은, 이를테면 철거민들 또한 경제적 이득을 욕망하는 사람들이었다든가 경찰조차도 무고하게 희생되었다는 사실들에서 나타난다. 이렇게 되면 정의와 불의의 배분이 순간적으로 도치되어버리고 우리는 아무것도 말할 수 없게 된다. 이유는 간단하다. 애초에 프레임을 잘못 짰기 때문이다. 분노는 치미는데 싸워야 할 상대가 사라진다.
<두개의 문>을 보면서 어쩌면 ‘두번째 문’은 (경찰이 몰랐던) 망루로 가는 통로일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상상하지 못했던 문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흥미롭게도 영화가 새로 짠 프레임은 오늘날 우리가 상상해야 할 싸움은 시민들 사이의 ‘갈등’이 아니라 어떤 힘에 대한 ‘적대’여야 한다는 제안에서 구체화된다. 경찰특공대에 걸려온 한 통의 전화. 어쩌면 그보다 앞서 있는 용산 일대의 재개발 논리, 그리고 이를 구현하고 있는 프로젝트파이낸싱. 우리가 열어야 하는 문은 바로 이 두번째 문이 아닐까.
물론 이것만으로 모든 것이 이뤄질 순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검찰의 수사기록이든 경찰의 채증기록이든 우리에게는 여전히 언어가 모자라기 때문이다. 그런데 <두개의 문>은 여기서마저 프레임을 또 한번 바꿔냈다. 이른바 ‘생존자’와 접촉하며 미학적 성취를 이루고 자족하기보다는, 과감히도 지배의 언어를 배우고 그 언어를 통해 지배에 맞서는 전략을 짠 것이다.
변호사가 묻는다. 검사도 묻는다. 그런데 경찰이 머뭇한다. 그걸 감독이 전한다. 그리고 우리가 보고 듣는다. 일순간에 오늘날의 지배가 얼마나 허점투성이인지 만천하에 드러난다. 권력은 국민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를 통치하지만 그 국민이 얼마나 제한적인 개념인지도 드러난다.
언어가 없을 때 우리는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영화는 다른 언어를 개발하는 데 골몰하기보다는 그 내부로 들어가는 역설을 채택한다. <두개의 문>이 선사하는 미덕은 여전히도 모순은 그 ‘안’에 있다는 사실에 있지 않을까. 이게 바로 우리가 이 영화에 좀더 관심을 가져봐야 할 이유이다.
김성윤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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