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영화·애니

함께 먹어 행복한 빵…위안과 허무 사이

등록 2012-07-13 20:00

<해피 해피 브레드>
<해피 해피 브레드>
[토요판] 김성윤의 덕후감
‘콩파뇽’(compagnon, 영어로는 companion). 동료 내지는 벗이라는 뜻이지만, 어원은 ‘빵(pan)을 함께하는(com)’ 사람에서 왔다. 빵은 나눠 먹어야 제맛이란 말일까. 그동안 우리는 자기가 먹기 위해 빵을 만드는 <스머프>의 ‘욕심이’나, 돈을 위해 빵을 만드는 <국부론>의 ‘제빵업자’만 알아왔다. 그러나 우리는 <제빵왕 김탁구>에서부터 바로 이 콩파뇽을 위해 빵을 만드는 캐릭터를 만나게 된다. 그게 바로 드라마 속 마준(주원)이는 알 수 없던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빵’의 비밀 아니었던가.

<해피 해피 브레드>라는 말랑말랑한 영화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영화는 상심에 빠져 있는 주인공 리에의 독백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녀는 잃어버린 동화 속 첫사랑 ‘마니’를 찾고자 한다. 마니는 동화 속 인물이자, 성인이 된 그녀가 상실했다고 여기는 형언할 수 없는 그 무엇이기도 하다. 그녀와 그녀의 남자친구 미즈시마는 홋카이도의 한적한 어느 시골에 정착해 카페 ‘마니’를 운영한다. 핸드드립 커피와 직접 구운 빵의 향연은 이 영화가 ‘슬로 라이프’와 관련이 있음을 보여준다. 시골의 소소한 일상, 형형색색 유기농 채소, 지긋이 손님을 기다려주는 시골 버스, 초원과 바다가 인접한 전원주택 등등.

영화는 포스터에서 보이는 것처럼 달달하고 훈훈하다. 세 편의 에피소드에서 미즈시마 커플은 가게를 찾아오는 젊은 여자, 꼬마 아이, 노부부에게 빵을 전해주며 그들의 영혼을 치유해준다. 관객의 영혼을 치유하겠다고 나선 영화이니만큼 리에가 타인을 치유함으로써 마침내 ‘마니’를 찾게 되는 결말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녀의 마니는 아마도 ‘관계성’이었던 듯하다. 동화 <달과 마니>에서 달이 눈부신 태양이 싫다고 하자, 주인공 마니가 달에게 ‘태양이 없으면 너도 빛날 수 없잖아’라며 달랬던 것처럼 말이다. 투덜대는 달은 리에 자신일 테고, 마니는 그녀의 남친, 혹은 어떤 깨달음이었을 것이다. 곧 ‘나’라는 주체는 사실 타인과 관계를 맺는 한에서만 ‘나’일 수 있다는 깨달음 말이다. 특히 영화 후반부의 ‘이웃들과 손잡고 둥글게 춤추기’ 같은 장면은 이 영화의 테마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행복의 빵=콩파뇽.’ 여기서 ‘빵’을 빼면, ‘행복=함께하는 것.’

만화 같은 스토리 라인이다. <해피 해피 브레드>는 ‘원인은 알 수 없지만 영혼만은 치유하자’는 일본 대중예술의 지배적 내러티브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 이 영화에서도 리에가 왜 그렇게 심적으로 취약한 상황에 빠지게 된 건지에 대해서는 별다른 설명이 없다. 굳이 영화적 관용을 발휘하자면 두가지 정도로 추론해볼 수 있을 뿐인데, 어른이 되면서 가지게 되는 순수성에 대한 상실감이거나 대도시에서의 정신생활이 가져온 소외감 정도다. 물론 그마저도 확신할 순 없다.

김성윤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
김성윤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
그런 까닭에 치유계 일본 영화를 보다 보면 위안은 잠시, 마음 한편에서 허망함 같은 게 스며오곤 한다. 영화에서처럼 우리는 우리 자신이 지닌 영혼의 상처가 어디서 온 것인지 출처를 몰라도 된다. 그저 콩파뇽을 이루고 살면 될 뿐이다. 그래서일까. <해피 해피 브레드>의 ‘대동놀이’(?) 신에선 등장인물들이 흡사 조증 환자 같아 보이기도 한다.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이런 류의 영화들은 주인공들이 무기력과 우울이라는 ‘지극히 복잡한’ 사회적 문제를 ‘지극히 순수한’ 사회적 방식(즉, 친교의 방식)으로 해결해버린다.

콩파뇽이라는 미사여구가 등장해서 솔깃하긴 하지만, 미즈시마 커플처럼 살다가는 우리들에게 상처를 주는 세계의 문제들이 궁극적으로는 방치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치유를 미덕으로 삼는 오늘날 대중문화 형식에서 한가지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게 된 셈이다. ‘사회를 문제 삼지 않은 채 사회적으로 산다’는 아이러니를 말이다.

김성윤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