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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돈의 해일이 삼킨 추억의 단관극장

등록 2012-07-15 19:47

민용근 영화감독
민용근 영화감독
민용근의 디렉터스컷
어렸을 때, 아버지의 친구분이 가끔 영화 초대권을 주시곤 했다. 한 달에 한 번꼴로 연락이 오면, 난 종로3가 단성사 옆 어느 건물로 가서 아버지의 친구분이 주시는 초대권을 받아들고 을지로나 종로에 있는 극장으로 달려갔다. 덕분에 10살이 갓 넘은 나이에 서울 시내 10대 개봉관을 두루 섭렵할 수 있었다. 초대권의 호시절이 끝난 뒤에도 시내에 나가 영화를 보는 일은 계속됐는데, 198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 상영됐던 당시의 영화들을 떠올리노라면, 마치 한 쌍의 커플처럼 그 영화를 상영한 해당 극장의 이름과 풍경들이 함께 떠오른다.

<구니스> <그렘린>의 대한극장, <다이하드> <서편제>의 단성사, <람보2>의 피카디리, <코만도>의 국도, <네이비 씰>의 명보, <아팟치>의 스카라 등등. 아세아 극장을 떠올리면, <신의 아들>이라는 권투영화로 갓 데뷔를 했던 당시 신인배우 최민수씨의 사인회 때 풍경이 생각난다. 어른들 틈을 비집고 들어가 사인해 달라며 전단지를 내밀던 11살의 나를 빤히 쳐다보던 그분의 강렬한 눈빛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신촌의 신영극장을 생각하면, 청소년 관람불가였던 <델마와 루이스>를 보기 위해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들어가다 잡힌 나를 몰래 입장시켜주던 매표소 누나의 무뚝뚝한 얼굴이 떠오른다. 극장 자체로서 기억에 남는 곳이라면 단연 대한극장이다. 그곳에 가는 날이면 왠지 더 설레는 기분이 들었다. 아마도 70㎜ 화면을 그대로 재현할 수 있는 초대형 스크린과 2000석 가까운 극장의 거대한 규모 때문이었으리라. 특히 <마지막 황제> 상영 때, 극장을 가득 메웠던 관객들의 풍경은 영화 속 장면만큼이나 엄청난 장관이었다. 멀티플렉스가 생기기 전, 아직 대부분의 영화관이 단관극장이었을 당시, 영화 자체만큼이나 기억에 남는 것이 바로 이런 극장의 풍경과 분위기였다. 각각의 고유한 개성을 지닌 단관극장들 덕분에 영화가 단순히 영화로서만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의 분위기와 공간의 느낌이 함께 녹아든 하나의 커다란 추억으로 남게 될 수 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 그런 모습을 추억할 수 있는 극장은 서울에 없다. 며칠 전, 마지막 단관극장인 서대문 아트홀이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1963년 화양극장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나, 1985년 개봉관으로 승격한 뒤 <영웅본색> 시리즈를 비롯한 홍콩영화 전문 상영관으로 최대 호황을 누리기도 했던 이 극장은 며칠 전 49살의 나이로 그 생을 마감하게 됐다. 한때는 시사회 전문상영관인 드림시네마로, 또 최근엔 서대문 아트홀로 이름을 바꿔가며 노인 관객들을 위한 고전영화 상영관으로서 나름의 소임을 다해 왔지만, 개발의 파도라는 운명을 피하진 못했다. 극장을 지켜달라며 1만명의 노인 관객들이 낸 폐관 반대 서명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곳엔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대형 호텔이 들어선다고 한다.

1998년까지 서울 시내 50여개이던 단관극장은 멀티플렉스 시대가 시작되며 급속도로 사라져갔다. 1999년엔 86년 역사의 국도극장이 허물어졌고, 2005년엔 70년 역사의 스카라 극장이 논란 속에 어이없이 철거되었다. 문화재청에서 스카라 극장을 근대 문화재로 지정하려 하자, 문화재로 지정될 경우 재산 가치가 하락할 것을 우려한 건물주가 기습적으로 극장을 허물어버렸던 것이다. 변화의 바람을 막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서울의 마지막 단관극장마저 사라져가는 풍경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공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건 사람도 아니고, 추억도 아니며, 보존 가치도 아닌, 오로지 돈뿐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씁쓸해진다.

민용근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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