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영화·애니

[토요판]절대악에 맞서는 용기가 필요한 시대

등록 2012-07-20 19:36수정 2012-07-20 21:08

<반지의 제왕>
<반지의 제왕>
[토요판] 김성윤의 덕후감
<반지의 제왕>이 한창이던 시절, 주인공 아라곤(비고 모텐슨)이 미국 굴지의 토크쇼에 출연한 적이 있다. 그의 티셔츠에 ‘No War’라고 적혀 있었는데 진행자가 물었다. “요즘 같은 전쟁통에 어째서 이런 티셔츠를 입었나?” 당시 미국은 이라크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그러자 아라곤이 기다렸다는 듯이 답했다. “너희들은 반지원정대를 미국이라 생각하고 어둠의 군주 사우론을 후세인이라 생각하지? 하지만 정반대야. 전세계 사람들은 아마 사우론을 미국이라 생각하고 반지원정대는 미국에 저항하는 나라라 생각할걸?” 어머, 이 아저씨 ‘개념’ 있지 않은가. 배역도 멋있더니 실생활도 멋있는 사람인 게 분명하다. 할리우드 영화 보는 눈을 다르게 만드는 배우임에 틀림없다.

그렇지만 사실 <반지의 제왕>은 좀 문제적인 텍스트다. 이 영화 이후 각종 판타지 장르의 문법이 자리잡았다는 점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특히 반지원정대 구성원이 각자의 장기를 가지고 롤플레잉(역할 수행)을 하면서 퀘스트를 해결해나가는 내러티브(서사)는 이후 수많은 소설, 그리고 게임 등에 영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절대반지를 운반하는 프로도, 그를 보필하는 샘, 활을 잘 쏘는 레골라스, 힘이 좋아 도끼를 잘 쓰는 김리, 왕좌의 포스를 풍기는 검객 아라곤, 회색에서 백색으로 ‘렙업’한 마법사 간달프 등등.

그러나 <반지의 제왕> 이야기 자체는 역사적으로 두차례의 세계대전을 통해 형성된 연합군 세력의 전승감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제이아르아르(J.R.R.) 톨킨이 집필했던 원작이 1950~60년대에 출간됐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반지원정대가 (모텐슨의 상상과는 달리) 현실 속의 누굴 재현한 것인지 비교적 분명해진다. 그렇다면 절대반지를 열망하는 사우론은 누굴 가리키는 걸까. 어떤 인격으로도 감히 재현할 수 없는 존재, 세계를 파멸로 몰고 갔던 어둠의 군주!

피터 잭슨의 영화에서도 이런 식의 재현 체계는 지속되었다. 우리 같은 동양 사람이 곰곰이 생각해보면 조금 더 불편할 수 있다. 반지원정대 구성원은 주로 앵글로색슨 계통에 속하지만, 사우론 세력은 (마법사 사루만을 제외한다면) 오크족을 비롯해 안면 형상이 일그러진 여타의 인종들로 채워져 있다. 몇몇 영화평론가는 이 영화 속에 포스트-식민주의 내지는 인종주의가 있다고 비난하곤 했는데, 완전히 틀린 말만은 아니었던 셈이다.

하지만 ‘빠심’ 가진 이로서 나는 (모텐슨처럼) 이 시리즈로부터 한가지 미덕을 구제하고픈 마음이 생기기도 한다. 일단은 재현이라는 문제에 괄호를 쳐보자. 그러면 순수한 이야기 형식으로서 <반지의 제왕>이 추출될 것이다. 대강 이렇다. 호빗 마을은 평화로웠다. 사우론이 부활하면서 호빗 마을에도 어둠의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예외가 없을 정도로 세계 전체가 장악된다. 더이상 소박한 삶은 불가능하다. 자, 이렇게 절대적 불가능성의 압력에 직면한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김성윤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
김성윤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
적어도 <반지의 제왕>은 내가 지난주에 썼던 <해피해피 브레드>에서처럼 잠자코 슬로 라이프를 즐기며 영적 치유를 얻는 데 혈안이 되진 않는다. 프로도를 비롯한 반지원정대는 서로 손잡고 깔깔거리며 ‘자뻑’에 빠지기보다는, 연대와 투쟁이라는 고난의 대장정에 나선다. 이 싸움에 주목해보자. 사우론 세력과 ‘맞짱’을 뜨긴 하지만 그 싸움은 단순히 악의 축에만 국한되는 건 아니다. 원정대 동료들끼리 치고받는 갈등,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과의 내면적 갈등. 싸움의 형식은 대략 이 세가지로 압축된다.

그렇다면 여기서 교훈 하나쯤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정말 소소하고 소박한 삶을 원한다면, 우리의 소박한 희망을 위협하는 것들에 맞서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사우론 같은 세상의 부도덕함, 권력으로 기울어지는 내 친구의 탐욕, 그리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나 자신. 아직도 세상엔 싸워야 할 게 많을지 모른다.

김성윤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