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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그 소년은 왜 괴물이 됐나…가슴 먹먹한 물음

등록 2012-07-29 20:06

민용근 영화감독
민용근 영화감독
민용근의 디렉터스컷
케빈에 대하여
함께 영화를 보러 갔던 친구는 상영 내내 힘겨워했다. 상영이 끝난 뒤 소심하게 고백하길, 이 영화가 어느 자폐아를 둔 어머니의 모성을 그린 따뜻한 영화인 줄로만 알고 있었다고 했다. 얼핏 들은 잘못된 사전 정보가 그 친구를 더 힘들게 했겠지만, 이런 반응은 비단 그 친구만의 것은 아니었다.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땅이 꺼지는 듯한 한숨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고, 상영이 끝난 뒤 몇몇 관객들은 멍한 얼굴을 한 채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케빈에 대하여>는 한마디로 설명하기 어려운 복잡한 감정과 긴 여운을 동시에 주는 작품이다. 영화는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아들을 둔 엄마의 현재에서 시작해, 두 사람의 관계를 처음부터 되짚어가며 전개된다. 아들 케빈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엄마 에바에게 고통스러운 존재였다. 유독 자신의 품에 안기면 울기를 멈추지 않는 갓난아이 케빈을 에바는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알지 못한다. 우는 아이를 태운 유모차를 시끄러운 공사장 옆에 놓고, 그 울음소리를 희석시키는 것이 에바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대처법이다. 그런 마음이 전해져서일까. 케빈은 점점 엇나가기 시작한다. 엄마를 향해 증오 섞인 소리를 내뱉고, 방금 기저귀를 갈아준 엄마 앞에서 보란 듯이 또 변을 본다. 마치 그것이 자기 삶의 소명인 양, 케빈은 점점 교묘한 방법으로 엄마에게 고통을 가한다. 에바는 아들을 바로잡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해보지만, 케빈은 이미 엄마가 통제할 수 있는 범위를 한참 벗어난 괴물이 되어 버린 지 오래다.

가학적이고 잔혹한 행위에 대해 죄책감을 못 느끼는 인격적 결함을 가졌다는 면에서 케빈은 선천적인 ‘사이코패스’처럼 보이지만, 자신에 대한 감정 조절 능력이 뛰어나고 충동적이지 않다는 면에서 ‘소시오패스’에 가까워 보이기도 한다. 그렇게 뒤틀려 버린 케빈이라는 소년과, 아들로 인해 인생이 뒤틀려버린 엄마의 모습을 보며 나는 반사적으로 그 원인을 찾아보려 했지만, 그 답은 모두 ‘왜?’라는 질문들로 다시 되돌아왔다.

미국의 극장에서 있었던 총기 난사 사건이나, 제주와 통영에서 잇따라 터졌던 끔찍한 사건들을 접한 뒤여서인지, 영화가 던지는 질문들은 더욱 섬뜩하게 느껴졌다. 케빈은 왜 엄마에게만 그토록 고통을 주고 싶어 했던 것일까. 에바는 왜 희생자 가족들이 살고 있는 마을을 떠나지 않은 채 지옥을 견디며 살아가는 것일까. 두 사람의 악연은 도대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이었을까. 자식을 제대로 된 사랑으로 돌보지 못한 에바 때문일까, 혹은 선천적으로 악마적 본성을 갖고 태어난 케빈 때문일까. 영화는 그 모든 것에 혐의점을 두지만 동시에 그 모든 것에 대해 확언하지 않는다. 단지 십수년에 걸친 두 모자의 관계를 세밀하게 보여줌으로써, 보는 이로 하여금 ‘왜’라는 질문만 거듭 반추하게 만든다. 영화를 보는 내내 객석에서 새어 나오던 고통스런 한숨 소리는 아마도,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이 좀처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다만 희미하게나마 추측할 수 있는 장면이 있는데, 나는 한동안 이 장면을 잊지 못할 것 같다. 영화의 마지막, 왜 그런 행동을 했냐는 에바의 질문에 케빈은 이렇게 답한다. “그땐 왜 그랬는지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잘 모르겠어.” 그 말 뒤에 이어지는 두 사람의 포옹. 그 속에서 희미하게나마 느껴졌던 건, 아마도 ‘애증’이라는 감정이 아니었을까.

민용근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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