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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다크 나이트 라이즈’ 속의 민중봉기와 용산참사

등록 2012-08-10 19:54수정 2012-08-10 19:54

영화 <다크 나이트 라이즈>의 악역 베인은 고담시의 첫 타격 장소로 증권거래소를 택했다.
영화 <다크 나이트 라이즈>의 악역 베인은 고담시의 첫 타격 장소로 증권거래소를 택했다.
[토요판] 김성윤의 덕후감
1년 전부터 ‘티저’(광고) 때리며 잠재적 관객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던 것치곤 시시했다. <다크 나이트 라이즈> 이야기다. 전작 <배트맨 비긴즈>가 내면적이고 실존적인 갈등으로, 그리고 <다크 나이트>가 순수하고도 치명적인 카오스로 사람들을 사로잡았던 데 비해, 이번 건 그런 게 하나도 없다.

생각해보면 잘된 일일 수도 있다. 왜냐. 다른 군더더기 없이 날것 그대로의 배트맨 이야기를 맛볼 기회니까 말이다. 아이언맨과 마찬가지로 배트맨은 부모 잘 만난 부자다. 그래서일까. 기업 경영보다는 치안 문제에 관심이 더 많다. ‘왜 싸워야 하지?’라는 질문에 그들은 대답한다. 경찰이 지킬 수 없으니까.

공교롭게도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서 경찰이 처리할 수 없는 문제란 고담시에 일어난 대대적인 민중 봉기 상황이다. 캣우먼이 맛보고자 했던 상황, 시간이 정지되고 공간이 탈맥락화되는 상황, 질서가 무너지고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는 상황. 경찰서장 고든은 “이건 혁명이 아니야”라고 말하는데, 역설적으로 바로 여기서 혁명일 수도 있다는 개연성이 생긴다. ‘아, 이 상황이 말로만 듣던 혁명 같은 것이겠구나.’

악역 베인이 고담시의 첫 타격 장소로 증권거래소를 택한 것도 흥미롭다. 실물이 있는 은행이 아니라 거래만 있는 증권거래소. 그들은 그곳을 ‘점령’해야만 했다. 그리고 감옥을 습격해서 온갖 흉악범을 탈출시킨다. 바스티유에 준하는 어딘가를 ‘습격’해야만 했던 것이다. 그리고 가진 자들을 색출하고 법정에 세워 사형이나 추방을 시킨다. 자신들이 믿는 정의를 위해 ‘인민재판’을 벌이는 것이다.

그런데 영화는 이 아래로부터의 요구를 배후의 누군가가 획책한 음모의 결과로 둔갑시켜버렸다. 물론 영화 속에서 어떤 세상을 만들 것인지는 전적으로 창작자의 자유에 해당한다. 그렇지만 그게 현실과 유비(맞대어 비교함) 관계를 형성할 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런 식의 내러티브는 현실에서 파업이나 시위 같은 봉기적 요구들이 있을 때, 대다수 소시민들로 하여금 연대성을 발휘하기보다는 거기서 특정 조직(혹은 이적단체)의 음모를 의심하게끔 유도하기 때문이다. ‘용산참사? 전철연이 배후 아냐?’라는 식으로.

따라서 이 봉기적 상황은 별 고민이나 관용 없이 응당 때려잡아도 무방한 상황으로 탈바꿈한다(그저 죽이지만 않으면 된다!). 그러다 보니 그동안 탐욕과 타락의 도시를 향했던 웨인과 배트맨의 분열증적 시선도 사라져버렸다. 오로지 지하 감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두려움을 극복해야 한다는 실존적 고민만 남았을 뿐이다. 그러고 나서 그가 택한 길은 무엇일까. 바로 경찰이 처리할 수 없는 치안 문제에 나서는 일이다. ‘어둠의 기사’라는 사설 용역의 길. 그래서 ‘다크 나이트 라이즈’ 아니던가.

우리는 바로 이 결단의 순간에서 불관용 치안과 사설 치안이 극적으로 조우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탐욕과 타락의 도시에서는 저들의 탐욕에 반하는 모든 사고와 행위가 철저히 통제되어야 한다. 따라서 오늘날의 불관용 치안 체제는 시민들의 봉기적 요구를 테러로 지목하고 그 현장에 경찰특공대를 출동시킨다. 그리고 특공대로 진압이 불가능하고 말만 많아진다면 배트카나 배트바이크 등 각종 최첨단 장비로 무장한 사설특공대(배트맨과 캣우먼 그리고 로빈)를 내세우면 되는 거고.

김성윤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
김성윤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
도대체 무엇이 정의인지는 여전히 불투명하지만, 어쨌든 이 영화가 한 가지 해답을 가진 것만큼은 확실해 보인다. 어떻게든 치안이 지켜져야 한다는 정언명령 외에는 어떤 것도 믿으면 안 된다는 것,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더이상 공적인 것은 유효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인가. 어둠의 기사가 우리의 도시를 떠돌고 있다.

김성윤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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