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용근 영화감독
민용근의 디렉터스컷
<내 심장이 건너뛴 박동>
열대야가 기승을 부렸던 지난 보름여 동안 밤잠을 설치게 만든 건 더위가 아니라 올림픽이었다. 4년마다 돌아오는 올림픽이 마치 나이 먹는 걸 알려주는 알람시계 같아 별로 반갑게 느껴지진 않지만, 매일 벌어지는 극적인 환희와 탄식의 순간들을 외면하는 것 또한 쉽지 않은 일이다. 시상대에 오르는 선수와 그러지 못하는 선수를 막론하고, 올림픽이라는 것은 모든 선수들이 열정과 노력을 쏟아낼 수 있는 꿈의 무대인 셈이다. 많은 사람들이 올림픽에 감동하고 몰입하는 이유 중 하나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극적인 ‘꿈의 무대’에 대한 동경 때문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많은 사람들은 그런 무대 위에 설 기회조차 갖기 힘든 게 현실이니까.
자크 오디아르 감독의 <내 심장이 건너뛴 박동>(2005년)은 꿈이라는 이름의 무대와 비정한 현실 사이에서 악전고투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주인공 톰은 폭력과 술수가 난무하는 부동산 업계에서 일을 하며 살아가는 청년인데, 그의 일상은 피아니스트였던 엄마의 옛 스승을 만나며 급속도로 바뀌기 시작한다. 피아노에 재능이 있던 어릴 적 톰의 모습만 기억하는 노스승이 그에게 피아노 오디션을 보러 오라며 명함을 주게 되고, 그로 인해 톰의 마음속엔 음악을 향한 꿈이 움트기 시작한다. 톰은 철저하게 이중생활을 하며, 함께 부동산 일을 하는 동료들 몰래 피아노 오디션을 준비하게 되고, 그의 은밀한 꿈을 위한 첫 무대가 마련된다. 그에게 명함을 건넸던 노스승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는 인생을 통째로 바꿀지도 모를 오디션 무대에 오른다. 그러나 그를 둘러싼 현실이 발목을 잡게 되고, 톰은 제대로 된 첫발도 내딛지 못한 채 연주를 망쳐버리고 만다.
영화는, 인생에서 쉽게 만나기 어려운 꿈의 무대에 선 남자가 결국 실패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영화의 마지막 장면인 톰의 눈빛 속엔 실패라 단정 짓기 어려운 묘한 기운이 담겨 있다. 그의 인생에서 ‘꿈의 무대’는 과연 그 오디션 자리였을까. 어쩌면 그에게 진정한 꿈의 무대는 거친 현실 속에서 다른 이들 몰래 피아노 레슨을 받으며 은밀히 꿈을 키워나가던 그 시기에 있었을지도 모른다. 자신만이 알고 있는 은밀한 꿈을 마음에 품은 채 눈을 감고 피아노 연습을 하던 톰의 모습 속엔, 그 어떤 화려한 무대에서도 느낄 수 없는 극적인 희열의 순간들이 담겨 있었다. ‘무대’라는 말은 그것을 보아줄 수많은 관객들이 포함되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우리 인생의 무대에서 가장 진실한 관객은 자기 자신 한 명으로 족할지 모른다.
이 글을 쓰며 한강의 소설집 <내 여자의 열매>에 있던 ‘작가의 말’이 생각났다. 너무도 정확한 말인지라, 덧붙일 말이 없어 이 인용문으로 글을 마무리 지어야겠다.
“스물네 살의 추석 밤이었다. 달을 보려고 혼자 대문에 나갔다. 처음 직장에 다니며, 잠을 네다섯 시간으로 줄이는 대신 도둑글을 쓰던 때였다. 소원을 빌어야지. 희끗한 달을 올려다보면서 나는 뭔가 바랄 만한 것을 생각해보려고 했다. 그냥, 이 마음을 잃지 않게만. 그리고는 더 빌 것이 없었다. 순간순간 차고 깨끗한 물처럼 정수리부터 적셔오던 충일, ‘그것’과 바로 잇닿아 있다는 선명한 확신. 이제는 글을 쓸 때 간혹, 일상 속에서는 아주 가끔 만날 뿐인 그 마음이, 그때에는 눈을 뜨면 늘 그 자리에 있었다. 밥을 먹을 때나 걸을 때나 사람을 만날 때나, 그 마음은 그 자리에 있었다.”
민용근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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