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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줄리엣 비노쉬, 맑고 단단한 그 이름. 줄리엣

등록 2005-08-03 17:25수정 2006-03-23 16:16

스크린속나의연인
안나, 테레사, 비안느…상처를 안으로 삭히는 맑고 단단한 그 이름. 줄리엣

줄리엣, 하고 말할 때마다 영롱하게, 그러면서 동시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는 희미한 눈동자. 푸른 빛? 그 깊은 속으로 빠져들면 끝없이 이어지는 미로. 그리고 한 줌의 기억들.

줄리엣? 보이저 2호가 발견한 천왕성의 위성이며 앙드레 지드의 정결한 참회록인 소설 <좁은 문>의 주인공이며 셰익스피어에 의하여 애틋한 사랑의 영원한 표상이 된 이름이지만 내게는 오직 영화 <나쁜 피>의 주인공 안나, 스크린을 가득 채웠던 맑고 푸른 그 배우의 이름 줄리엣.

어디서 보았던가. 당신의 <세가지 색-블루>는 종로였고 <퐁뇌프의 연인들>은 명동이었는데, 처음 만난 것은 어느 대학교 영화과 학생들의 감상회, 그 한 순간. 90년대 초, 그 무렵의 제목은 <더러운 피>. 저 50년대의 누벨 바그에 대응하여 90년대의 프랑스 영화를 견인한 누벨 이마주. 그 새 물결의 선발 타자 레오스 카락스의 두 번째 작품에서 줄리엣! 당신은 오십여 석의 객석에 고작 대여섯. 맨 앞 줄에 앉아 고개를 쳐들고 있는 나를 내려다 보며, 영화 속 침실 장면인데, 그 투명한 얼굴을 화면 가득 채운 채 끝없이 속삭였는데, 오직 그것만이 생생하게 남은 기억.

줄리엣, 당신의 영화 속 이름들은 안나(<나쁜 피>)였으며 테레사(<프라하의 봄>)였고 다시 안나(<데미지>)였다가 줄리(<세가지 색-블루>)였다가 다시 한나(<잉글리쉬 페이션트>)를 지나 베아트리체(<카우치 인 뉴욕>)를 거쳐 비안느(<초콜렛>)가 되었는데 그 영화들을 볼 때마다 나는 그 수많은 이름들, 그러니까 안나, 테레사, 베아트리체, 비안느가 하나같이 줄리엣이었고, 또한 그럴 수밖에 없었는데, 그러니까 나는 레오스 카락스나 필립 카우프만, 혹은 라세 할스트롬이나 안소니 밍겔라의 영화를 본 게 아니라 오로지 줄리엣, 그 맑은 이름만을 본 것이 아닐까.

아무래도 <나쁜 피>. 내 마음 속에 낙인처럼 찍힌, 영화 속의 안나, 곧 줄리엣. 이상기후의 폭염과 사랑없는 섹스에 따른 괴질이 짖누르는 파리. 학생들이 정성껏 마련한, 그러나 비좁은 감상실의 후덥지근한 공기와 꽤 여러차례 복사한 듯한 낡은 필름 때문에 이 뜨거운 영화는 뜻밖의 리얼리티를 갖게 되었는데, 나는 맨 앞에 앉아, 세상의 모든 것이 녹아내릴 듯한 분위기의 영화 속에서 그야말로 이슬처럼 투명한, 완력깨나 쓰는 중년의 젊은 애인으로 출연하여 푸른 옷 푸른 눈으로 침대 위에서 속삭이는, 그리고 너무 더운 나머지 아랫 입술을 내밀어 바람을 만들어 그것을 당신의 얼굴 위로 불면서, 그 때문에 머리카락을 가볍게 흐트러뜨리는, 그리고 다시 끝없는 속삭임. 그 순간 내 마음 속에 낙인으로 찍혀버린 <나쁜 피>의 안나, 곧 줄리엣. 이 영화에 함께 출연하였고 키에슬로프스키의 <세가지 색-레드>의 주인공인, 줄리 델피의 그 매혹적인 얼굴은 기억조차 희미할 정도로 강력한 펀치로 내 심장을 강타한 그 안나, 곧 줄리엣 비노쉬.

명동에서 보았던 영화 <퐁네프의 연인들>. 그 영화의 남자 주인공이 당신의 가방 속에 쪽지를 남기며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하늘이 하얗다고 말해줘. 만일 그게 나라면 구름은 검다고 말할게”라고 썼는데, 다음 날. 당신은 마치 재떨이에 담뱃재를 털 듯이, “오늘도 꽤 덥네”하고 무심코 내뱉듯이, “하늘은 하얗다”고 말하는데, 남자 주인공 대신 내가 오히려 긴장하여 “그래, 구름은 검어”라고 말할 뻔 했으니, 왜 그랬을까.

정윤수 문화평론가, 축구평론가
정윤수 문화평론가, 축구평론가
당신의 영화 <데미지>. 사랑하는 연인, 그리고 그 아버지와도 인연을 맺게 된 안나, 곧 줄리엣은 어느 호텔 침대에서 “상처받은 사람은 위험해요. 그들은 살아남은 법을 아니까요”라고 담담하게 말하는데, 그때 나는 깨달았으니, 줄리엣, 그 이름은 상처를 안으로 삭히는 이름이며 그 상흔을 남루하게 드러내지 않고 또한 그 고통을 악용하여 다른 이의 눈물을 강요하지 않으며, 오로지 속으로 삭히며 다스릴 뿐, 조금의 공격성도 없이, 눈물 한 방울조차 용납하지 않으며, 자신이 상처입었다는 사실을 단 한순간도 내색하지 않은 채, 그리하여 끝내 상처입은 사실조차 잊어버리고 말았으니, 아주 단단한 이름 줄리엣 비노쉬! 나의 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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