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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춘향전’ 리메이크 작품 왜 그리 많은 걸까

등록 2012-08-24 19:36

[토요판] 김성윤의 덕후감
한국영상자료원에서 간혹 오래된 한국 영화를 상영해주는데, 그럴 때면 적어도 60~70대는 돼 보이는 분들이 객석을 채우곤 한다. 그런 분들을 보면서 자연히 나의 미래를 상상하기 마련이다. 나도 늙으면 요즘 음악이나 영화 같은 걸 찾아다니게 될까. 그때 보게 될 영상물들은 어떤 느낌이 날까. 노스탤지어? 아니면 지금과 다름없는 흥미진진?

며칠 전 내가 본 건 <두견새 우는 사연>(1967)이라는 ‘로맨틱+호러’ 영화였다. 이날도 어김없이 대다수 관객은 노인들이었다. 이 영화의 무엇이 이들을 불러 모은 걸까.

<두견새…>는 이미자가 불렀던 동명의 영화 주제가로도 유명하지만, 같은 해에 제작됐던 <월하의 공동묘지>와 함께 ‘소복 입은 여자 귀신’ 영화의 시초로도 알려져 있다. 1967년을 기점으로 소복 여귀가 한국 공포영화의 ‘클리셰’가 되었으니 여러모로 기념비적인 영화라 할 만하다.

물론 이런저런 영화사적인 이유 때문에 현재의 노년 관객이 극장을 찾은 건 아닐 것이다. 사람의 마음은 주관적으로 움직이지 않던가. 그래서 영화 내용을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 흥미롭게도 이 영화에는 <춘향전>과 <전설의 고향>이 섞여 있다. 윤승지의 외아들 윤도령(신성일)이 퇴기의 외동딸 옥화(김지미)와 신분을 넘어선 사랑을 나누는 건 <춘향전>이고, 혼백이 된 옥화 덕에 윤도령 내외가 개과천선하는 건 <전설의 고향>이다.

잠깐 이런 생각을 해봤다. 왜 장르를 불문하고 <춘향전>을 리메이크하거나 개작한 작품이 그리도 많은 걸까. 흥행이 보증될 만큼 소위 ‘안전빵’이어서 그랬던 걸까. 이야기 자원이 부족하니 <춘향전>이 그만큼 많이 소환된 걸 수도 있겠다. 그러나 어찌 됐든 수많은 관객이 춘향과 몽룡의 사랑에 열광했다는 건 특정 내러티브에 대한 집합적 소비, 즉 대중의 정서구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걸 보여준다. 오늘날에도 노인들이 젊은 시절에 개봉했던 영화를 꾸준히 찾는 모습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말이다.

<춘향전> 이야기의 핵심은 권선징악과 더불어 신분을 초월한 ‘낭만적 사랑’에 있을 터이다. 관객들은 절개를 지킨 춘향의 해피엔딩과 겁박을 일삼던 변사또의 종말을 보면서 도덕적 쾌감을 느낀다. 그러나 극적 짜릿함의 진짜 원천은 두 청춘 남녀의 피 끓는 사랑에서부터 시작한다. 퇴기의 여식과 남원부사의 자제가 일대일에 입각한 감정을 갖는 순간, 이 이야기는 결말을 절대로 예측할 수가 없다. 혹은 알더라도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가문의 이름으로 배우자가 ‘결정’되는 결혼 제도 속에서 가족의 이해관계와 다르게 개인적 감정으로 배우자를 ‘선택’한다는 건, 정말로 힘든 일이다. 내가 이렇게밖에 묘사를 못하는 건 그 힘듦을 말로 형용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굳이 오늘날에 비유하자면, 경제적 비전을 바탕으로 배우자가 ‘결정’되는 현실 속에서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배우자를 ‘선택’하는 것만큼 비극적이랄까.(그런 점에서 우리 시대의 <춘향전>에 해당하는 건 차라리 <짝>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오늘날의 우리는 주로 낭만적 사랑과 경제적 비전 사이에서 규범적 균형을 이루기 위해 번민하지만, 과거의 그들은 가문의 뜻과 낭만적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는 게 일종의 시대적 정서구조가 아니었을까 하고 말이다.

김성윤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
김성윤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
그런 점에서 어른들이 옛 영화를 찾는 건 비교적 자연스러운 일인 것 같기도 하다. 적어도 영화에 몰입해 있는 순간만큼은 사랑이 탈낭만화되지 않고, 그분들 말대로 하자면 적어도 ‘말세’는 아닌 것 같은 위안을 주기 때문 아닐까. 노스탤지어에는 세계가 변동중이란 걸 망각하게 하면서 개인들의 시간을 지연시키는 놀라운 힘이 있다.

김성윤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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