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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사이코패스와 우리’ 사이의 거리

등록 2012-09-07 19:50

 영화 <이웃사람>
영화 <이웃사람>
[토요판] 김성윤의 덕후감
얼마 전 한 술자리에서 격한 대화를 나누던 주변 사람들이 심하다 싶을 정도의 폭력을 주고받는 상황이 빚어졌다. 이때 주위 사람들은 뜯어말렸어야 했을까, 아니면 경찰을 불러 상황을 종료시키는 게 나았을까. 물론 수수방관하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시민의식 있는 사람이라면 고민해볼 만한 문제다. 요는 시민자치와 공권력 중 어떤 것이 낫겠느냐는 것이다.

영화 <이웃사람>은 시민자치 쪽에 손을 들어주는 것 같다. 내 이웃이 연쇄살인범일 수도 있으니 알아서 조심해야 하고, 이때 우리들이 모여서 힘을 합친다면 최악의 상황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영화 속 세상에서 공권력은 공(空)권력일 뿐이다.

요즘같이 묻지마 범죄가 창궐하고 성폭력이 횡행하는 마당에 <이웃사람>의 개봉은 천운을 타고난 것만 같다. 원작인 만화는 못 봐서 모르겠다. 만화, 게다가 웹툰은 고유의 매체적 감각이 있으니 사정이 다를 수 있는데, 어쨌든 영화의 메시지는 크게 두 축으로 분할된다. ‘주민 여러분, 범죄 조심하세요’와 ‘다 같이 합심해서 흉악범죄 없는 세상 만들어요’다.

그런데 <이웃사람>을 따라가다 보면 한 가지 불편한 이야기를 만나게 된다. 왜냐면 이 영화에서 연쇄살인범은 누가 봐도 사이코패스일 것 같은 인물로 나오기 때문이다. 어딘지 모르게 동공이 풀려 있는 게 음흉해 보이고 특별한 직업 없이 은둔형 외톨이로 사는 30대 남성! 그렇다. 이 영화의 ‘범죄 조심’ 테제는 우리 사회에 퍼져 있는 사이코패스에 관한 ‘스테레오타입’에 기대고 있다. 쉽게 말해 이상해 보이는 사람이 이상하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면 이제는 ‘시민자치’ 테제로 넘어가보자. 여기서 공권력의 자리가 구조적으로 비어 있다는 건 의미심장하다. 대신 그 자리에는 이웃사람들로 채워져 있다. 제 아이의 안전을 확보하고자 하는 여느 엄마, 호기심 많은 피자집 알바생, 음침한 사연을 갖고 있는 경비원 아저씨, 어딘가 의협심 있어 보이는 사채업자 등등. 이들은 마을의 안전을 스스로 지키는 일종의 비공식적인 ‘자경단’ 구실을 한다.

스테레오타입과 자경단. 어쩌면 우리한테 주어진 선택지가 이 정도일 뿐이라는 생각에 공감이 들 법도 하다. 얼마 전 여의도에서 있었던 묻지마 범죄 사건에서 나타났듯이, 범죄통계학적인 관점으로 봤을 때 경찰이 출동하는 것보다 용감한 시민들이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는 게 피해 규모나 빈도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경찰은 항상 사후적이지 않은가. 그러나 현장에는 공권력보다 시민들이 항상 그리고 이미 앞서 있다.

그렇지만 우리가 이 영화처럼 세상을 이해하고 개조하는 데에는 한 가지 쟁점이 뒤따른다. 왜냐면 멀쩡해 보이는 이웃사람들(즉 우리 자신)도 사실 이상하긴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세속적인 기준에서야 흠잡기 어렵지만, 재개발로 자산 이득을 취하려는 우리, 각종 편법과 탈법으로 이자 수익을 올리려는 우리, 그리고 남모를 잘못으로 자의식이나 수치심 하나쯤은 갖고 있는 우리가 아닌가.

김성윤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
김성윤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
그런데 이렇게 이상한 우리들은 더 이상한 이웃 하나로 인해 정상적인 사람으로 둔갑한다. 적어도 우리는 이유 없이 사람들을 죽이고 토막 내지 않으니까 말이다. 이렇게 ‘사이코패스와 우리’라는 분할선이 그어지면서 우리는 더는 자아비판을 하지 않아도 되는 상상적 특권을 누리게 된다. 영화를 보는 순간, 그동안 공공의 적이라 생각해왔던 사채업자가 물리적 완력을 발휘해주길 넌지시 기대하게 되는 건 뭔가 이상야릇하다.

생각해보면 요즘 세태가 바로 이렇다. 공적인 것이 소실되는 세계, 이곳에서 가상의 적이 생김으로써 얼룩이 잔뜩 묻은 우리들은 잠시나마 결속하고 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우리는 우리 내면에도 적이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지 않은가.

김성윤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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