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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김기덕 시나리오 자극적이다’고 많이들 악평 했다”

등록 2012-09-09 15:26수정 2012-09-23 20:07

영화감독 민용근
영화감독 민용근
민용근 디렉터스컷
김기덕 영화의 힘
대학 1학년 시나리오 수업 때였다. 교수님이 시나리오 한 부를 들고 오시더니, 우리에게 읽어보라고 하셨다. 영화진흥공사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작품이었는데, 당시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의 첫 느낌이 아직도 기억난다. 뭔가 투박했고, 엉성했고, 기괴했던. 때문에 대부분의 학생들은 자극적이고 치기 어린 시나리오라며 많은 악평을 했다. 하지만 그 후, 우리들의 대화에 그 작품은 이상할 정도로 자주 언급됐다. 쉽게 뱉어버릴 수도, 삼킬 수도 없는, 묘한 이물감이 느껴지던 그 시나리오의 제목은 <무단횡단>. 아직 데뷔작을 찍기 전, 김기덕 감독의 존재를 처음 알게 만든 작품이었다.

그 후로 김기덕 감독은 엄청난 속도로 자신만의 독보적인 작품목록을 쌓아나갔다. 온갖 인간적 모멸을 감내하며 눈물겹게 만들어냈다는 데뷔작 <악어>부터, 국내외 평단의 인정을 본격적으로 끌어내기 시작한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한해에 베를린과 베네치아 영화제 감독상을 각각 수상한 <사마리아>와 <빈 집>, 그리고 최근의 <아리랑>까지, 작품마다 김기덕 감독은 화제와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매번 발표되는 작품을 볼 때마다, 나는 시나리오 <무단횡단>을 처음 읽었을 때의 느낌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한 편의 영화를 보는 와중에도 탄성과 불만이 수시로 교차하고, 이 영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곱씹게 만드는 그 무엇. 김기덕 감독의 열여덟 번째 작품이자, 아마도 그의 대표작이 될 <피에타>를 보고 난 뒤에도 그 느낌은 마찬가지였다.

영화 <피에타>
영화 <피에타>

많은 기대를 갖고 봤기 때문인지, 영화의 중후반부까지 다소 실망스러웠던 게 사실이었다. 과장되고 직설적인 표현, 현실의 미세한 디테일을 무시하고 가는 장면들은 강렬함을 품고 있긴 했지만, 자꾸 반복되다보니 오히려 상투적으로 느껴졌다. 영화를 ‘느끼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강제로 ‘주입’하는 듯 한 뉘앙스도 불편하게 느껴졌다. 예를 들어 주인공 강도(이정진)의 잔혹한 악마성, 그리고 엄마라고 자처하는 여인(조민수)을 만나 변하게 되는 과정은 마음으로 느껴진다기보다, ‘정보’로 전달받는 느낌이었다. 큰 그림을 그리는 데는 탁월하지만, 그 안의 작은 디테일들을 구현하는 데는 여전히 무심하거나 혹은 서툴다는 느낌이 이 영화에도 남아 있다.

하지만 위의 이유들로 그의 영화를 쉽게 재단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이미 나는 알고 있다. 언젠가 감독 본인이 말했듯, 그의 영화는 ‘반추상’의 영화이다. 직설적이고 투박한 디테일들이 강렬한 추상적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데에서 결국엔 묘한 동력으로 작용한다. 가혹할 정도로 거칠게 몰아붙이던 영화는 어느 순간 한 편의 시(詩)로 변모해 공중으로 솟아오르는 느낌을 갖게 만든다. 그 비상의 놀라운 순간 속에 김기덕 영화의 정서적 핵심이 응축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가 만들어왔던 영화들을 되새기노라면, 군에 입대한 첫날의 어떤 기억이 떠오른다. 낯선 상황 속에 놓여 하루 종일 구르고 윽박지름을 당했던 그날, 일과를 마친 뒤 단체로 떠밀려 들어갔던 성당의 천주교 미사. 그곳에서 처음으로 들었던 은은한 성가의 느낌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거친 현실과 성스러운 어떤 순간이 부딪칠 때 만들어지는 깊고 커다란 낙차. 그 낙차로 인해 파생되는 강렬한 정서적인 울림이 그의 영화들에 담겨 있고, 특히 <피에타>의 마지막 장면은 그 울림의 정점과도 같다. 잔혹하고 비정한 만큼 아름다운, 그래서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을 그 강렬한 이미지가 결국 마음을 움직인다. 그로 인해 나는 여전히,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삼키거나 뱉어내지 못한 채 오랫동안 내 안에서 반추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영화감독 민용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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