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호진 기자
울림과 스밈
어느 자리에서 만났던 한 저예산 애니메이션의 감독은 술잔을 내려놓으며, 한숨을 뱉었다. “다음엔 지역 문예회관, 강당에서 상영하는 방법이라도 알아봐야겠어요.” 독립영화인들은 그나마 상영 기회를 얻고, 주민들은 독립영화 인식을 넓히는 계기도 될 것이란 얘기다. 그럴싸한 대안처럼 들리지만, 사실 “상영관을 못 잡을 바엔 차라리…”란 그의 말은 어떻게든 돌파구를 찾고 싶다는 하소연에 가까웠다.
13일 열린 영화 <피에타>의 이탈리아 베네치아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 축하행사. 주최자인 최광식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제2·제3의 <피에타>가 나와야 한다”며 “새 아이디어를 얻었는데, 박물관 강당이나 공연시설에서 독립·예술영화를 향유할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문예회관, 전국 14개 미디어센터를 독립·예술영화 상영시설로 육성하겠다”고도 했다.
한 독립영화인의 넋두리와 장관의 생각이 맞아떨어진 걸 반겨야 할까? 영화계에선 ‘불공정 상영문제’가 대두된 시점에서 나온 장관의 해결책치곤 “안이한 수준”이란 평가가 많다. 문예회관에서 관객과 만나는 것도 의미있지만, 안정적으로 상영해줄 독립·예술영화관 확대란 실질적 방안을 기대했다는 것이다.
장관은 “새 아이디어”라 했지만, 이미 영화진흥위원회가 문예회관·미디어센터를 방문하는 독립영화 기획전을 하고 있다. 영진위 관계자는 “극장이 거의 없는 곳을 찾아가니 호응이 높다”며 “하지만 회관·미디어센터도 자체 행사가 있고, 디지털 영사기를 갖춘 극장도 아니어서 (특정기간에만 상영되는) 비상설 공간으로 활용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대개 무료 상영이라 제작사에 합당한 수익을 돌려주기도 어렵다.
그래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예산을 분담해 주요 도시 7~8곳에 독립·예술영화관을 추가 설치하자는 영화계 요구가 나온다. 문화 다양성을 위해 공적 자금 투입을 바라지만, 정부는 예산 편성에 난색을 표한다. 민간독립영화관 인디스페이스 쪽은 “극장 시설을 빌려 활용하면 임대보증금을 포함해 최소 연간예산 5억원이면 운영할 수 있다”고 말한다. 영진위 국내진흥부 관계자는 “저예산 영화들이 전국 20개관 안팎에서 개봉하는데, 적어도 40개관 이상 개봉해야 제작비 본전을 찾을 기회를 엿볼 수 있다”고 말했다.
영진위가 다양성 영화로 인정한 작품을 극장에서 일정 비율 상영하는 ‘다양성 영화 쿼터제’ 도입도 독립영화계의 해묵은 요구다. 수익을 따져야 하는 상영관 쪽의 의견도 반영해 최소한의 비율을 정하자는 것이지만, 문화부는 “산업을 직접 규제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선을 긋는다.
대기업 투자·배급사 임원 출신의 얘기다. “복합상영관을 가진 대기업이 투자한 영화가 800~1000개관에서 상영해도 좌석점유율은 20~40%다. 사실 다른 영화에 스크린 일부를 내줘도 대기업이 투자한 영화의 흥행결과와 극장 매출엔 별 차이가 없다.”
씨제이가 투자·배급해 700~800여개관을 잡은 <광해, 왕이 된 남자>에선 가짜 광해 ‘하선’(이병헌)이 자기 안위만 챙기는 관료들에게 “적당히들 하세요. 적당히”라고 소리친다. 대기업 영화가 스크린을 과다 점유하고, 문화부 장관이 ‘박물관 강당’을 상영관 대안으로 언급한 상황을 바라보는 중·저예산 작품 영화인들의 심경을 담은 듯한 대사가 아닐 수 없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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