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테이큰2>
[토요판] 김세윤의 재미핥기
<테이큰2>를 보면서 든 몇 가지 생각.
하나. 이 남자의 무기는 총이 아니다. 목소리다. 리엄 니슨의 꿀성대가 아니었으면 <테이큰> 1편의 명대사도 없었다는 걸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아돈노후유아…’ ‘아윌파인쥬 아윌킬유!’ 이상하게 한글로 받아써야 제맛인 대사들이 전화기를 타고 흐를 때, 그의 목소리는 정말 낮고 위엄이 있어서 제아무리 괄약근이 쫄깃한 젊은 악당일지라도 결국 찔끔찔끔 오줌을 지리게 만들었으니, 진정한 요실금 메이커셨다, 걔네 아빠는.
이번에도 아저씨는 순전히 목소리만으로 상대의 기선을 제압하는 패기를 보여주신다. 아무리 그래도 명색이 악당들인데 주인공 목소리에 죄 주눅이 들어서는 제대로 된 손찌검 한번 못해보고 어쩜 그렇게 맥없이들 쓰러지는지…. <테이큰2>에서 가장 먼저 지적받아 마땅한 ‘허약체질 마피아 캐스팅의 오류’조차도 나는 그저 그의 목소리가 너무 좋은 탓이었다고 이해해주기로 했다.
둘. 이제 확실히 양복쟁이 히어로의 시대는 갔다. 멋진 슈트를 차려입고 한 손으로 본드걸을 끌어안는 사이 나머지 한 손으론 방아쇠를 어루만지던, 몹시 리비도 충만하던 액션 영웅의 시대는 바이바이. 빤지르르 빗은 머리 포마드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느끼해서 서러워하던 제임스 본드의 호시절일랑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007 스무번째 시리즈 <007 어나더 데이>를 보며 제임스 본드의 값비싼 양복을 영 거추장스러운 작업복으로 느끼게 만든 시사회 현장에 내가 있었다. 때는 2002년. <본 아이덴티티>가 처음 세상에 나오고 얼마 뒤에 열린 시사회였다. 그해 신세대 액션 영웅 제이슨 본의 S/F 시즌 패션 제안은 면바지에 티쪼까리, 청바지에 니트 나부랭이. 그런데도 본이 더 있어 보였고 본드는 구려 보였다.
그로부터 정확히 1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우리 시대 액션 영웅의 롤모델은 제임스 본드에서 제이슨 본으로 바뀌었다(대니얼 크레이그가 캐스팅 된 후엔 제임스 본드조차 제이슨 본을 닮아가는 중이다). 스포츠카 대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데 주저함이 없는 서민적 영웅, 악당의 사지를 이리 접고 저리 꺾는 ‘꺾기도’의 달인 제이슨 본. 악당을 처치하러 나온 건지 그냥 컵밥을 먹으러 나온 건지 구분하기 힘든 그의 고시원 패션마저, 사람들은 남의 시선 따윈 신경쓰지 않겠다는 진정한 프로페셔널의 자신감으로 봐주기에 이르렀다. 그러니 <테이큰> 시리즈의 아빠도 굳이 양복을 꺼내 입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테이큰2>를 보고 하게 된 생각 셋. 마피아 패밀리 하나 정도는 ‘독고다이’로 가뿐하게 해치울 능력이 없다면 이젠 애도 낳지 말아야 하는 것인가. 무쇠 팔, 무쇠 다리, 로켓 주먹으로 자기 가족 지켜내는 브라이언 앞에서 객석의 아빠들은 한없이 작아지게 마련. 고개 숙인 그들을 벌떡 일으켜 세울 기적의 명약은 막연한 “힘내그라” 한마디가 아니라 “우리가 지켜주겠다”는 공권력의 믿음직한 약속일 터인데… 어째 이 나라에선 별로 기대할 게 없어 보인다. 결국 내 아이를 지켜내는 책임은 고스란히 부모의 부담으로 남는다.
<왼편 마지막 집> <브레이브 원> <모범시민> <데스 센텐스> 그리고 박찬욱 감독의 복수 3부작과 <테이큰> 시리즈까지. 꾸준히 만들어내는 일련의 자력구제 시네마는 우리에게 사적 복수를 부추긴다. 경찰은 무능하고 법원은 네 편이 아니라고 속삭인다. 그렇다고 해서 “아윌파인쥬 아윌킬유!” 자신있게 뇌까릴 수 있는 아버지가 몇이나 될까? 전직 시아이에이(CIA) 요원 출신 브라이언은 그래서 모든 아버지들의 로망이며 또한 절망일 수밖에 없다. 세상 모든 아빠들이여. 아돈노후유아… 하지만… 굿 럭!
김세윤 방송작가
<한겨레 인기기사>
■ “박근혜 빼고 다 바꿔야…이대로는 대선 진다”
■ 중저가 이미지 탓?…한달 700대 ‘K9의 굴욕’
■ 수녀원 지하에 진짜 모나리자 유해가?
■ “파주·용인·청라·영종, 가계빚 폭탄 위험지역”
■ 누출된 불산이 사람의 피부까지 침투했다
■ 세금 낼 돈 없다던 고액체납자 집에 장승업 그림이…
■ [화보] 귀여운 연재의 ‘말춤’ 구경해보실래요?
김세윤 방송작가
■ “박근혜 빼고 다 바꿔야…이대로는 대선 진다”
■ 중저가 이미지 탓?…한달 700대 ‘K9의 굴욕’
■ 수녀원 지하에 진짜 모나리자 유해가?
■ “파주·용인·청라·영종, 가계빚 폭탄 위험지역”
■ 누출된 불산이 사람의 피부까지 침투했다
■ 세금 낼 돈 없다던 고액체납자 집에 장승업 그림이…
■ [화보] 귀여운 연재의 ‘말춤’ 구경해보실래요?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