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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작은 힘들이 영화를 올린다

등록 2012-10-28 17:37

영화감독 민용근
영화감독 민용근
민용근의 디렉터스컷
‘돌아보자’는 목소리는 이 시기에 더욱 절실하게 들린다. 우리는 지난 일들을 ‘역사의 판단’이라는 모호한 무덤 속에 묻어두기보다, 끄집어내어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유독 힘겨웠던 지난 5년의 시간들 때문일까. 새로운 선택을 앞둔 이 시기에 ‘돌아보자’는 목소리의 영화들이 연이어 나오고 있다. 하지만 그 영화들 모두, 세상에 나오게 되는 과정이 그리 녹록지만은 않았다.

우선, 정지영 감독의 <남영동 1985>. 고 김근태 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수기에 토대를 두고 만든 이 영화는, 1985년 옛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22일간 자행된 끔찍한 고문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 상영 당시, 객석은 무거운 침묵과 눈물로 메워졌다. 지난 시대의 상처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뜨겁고도 냉철한 시선이 마음을 움직이게 만드는 영화제 최고의 화제작이었지만, 뜻밖의 소식이 들려왔다. 배급사를 찾지 못해 개봉이 불확실하다는 것이었다. 자세한 이유까지 듣진 못했지만, 메이저 배급사가 정치적으로 민감한 이 영화를 껄끄러워한다는 추측을 해보는 건 어렵지 않았다.

<엠비(MB)의 추억>은 대통령 선거 유세 당시 이명박 후보자의 모습을 통해, 지난 5년간의 우리 사회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정치 코믹 다큐멘터리이다. 현직 대통령을 풍자했다는 점,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최고의 인기작이었다는 점에서 많은 화제를 모았지만, 정작 개봉관은 전국 4개관뿐이었다. 개봉 전날 시사회에서 김재환 감독은 ‘대한민국 대통령께서 주연을 맡으신’ 이 영화를 홀대하는 멀티플렉스 극장의 이상야릇한 담대함에 대해 크게 한탄했다.

강풀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영화 <26년>은 광주 민주화운동의 희생자 가족들이, 비극의 원흉인 ‘그 사람’을 암살하려는 과정을 그리는 작품이다. 2008년, 배우 캐스팅까지 완료되어 촬영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 있던 시점에 석연치 않은 이유로 투자가 철회되면서 갑작스레 제작이 중단된 이야기는 이미 많은 이들이 알고 있을 것이다. 그 뒤에도 여러 차례 제작이 시도됐으나 여의치 않았고, 지난봄엔 10억원을 목표로 인터넷을 통해 개인들의 모금을 받는 ‘크라우드 펀딩’을 추진했지만 모금액 미달로 모두 환불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비슷한 이유로 제작과 개봉의 어려움을 겪던 이 3편의 영화들에 대한 반가운 소식이 들린 건 최근의 일이다. 영화를 본 관객들의 뜨거운 반응에 힘입은 <남영동 1985>는 최근 한 배급사의 참여로 11월22일 개봉을 확정했고, 15살 관람가 등급 판정까지 받았다. <엠비의 추억> 역시, 개봉과 동시에 연이은 매진을 기록하며 좌석 점유율 1위에 올랐고, 덕분에 멀티플렉스 극장이 조금씩 열리고 있다고 한다. 최근 촬영을 끝낸 <26년>도 11월29일 개봉을 확정지었다. 특히 일반 관객들이 제작비를 모아 영화에 투자하는 방식인 ‘제작 두레’를 통해, 2만여명이 참여하여 총 7억3000만원이 넘는 금액을 모았고, 이는 영화 제작의 큰 밑거름이 되었다.

지금도 그 과정이긴 하지만, 이 영화들이 난관을 극복해가는 과정 자체가 영화 같다는 생각이 든다. 민감한 사안에 대해 몸을 사리는 거대 자본을 대신해, 힘을 모아 흐름을 변화시키는 관객들의 모습이 뭉클하게 다가왔다. 이 영화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 그리고 관객들이 원하는 것은 단순히 과거를 되새기고자 함이 아닐 것이다. 지난 시간을 ‘돌아봄’으로써, 우리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설계하고자 하는 강렬한 열망일 것이다. 영화를 통해 그 기회들을 만들어가는, 작지만 힘 있는 목소리들이 어떻게 미래를 변화시킬지 궁금하고, 또 기대된다.

민용근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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