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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음악, 무료한 일상 깨고 소통을 속삭이다

등록 2012-11-04 20:02

영화 <비지터>
영화 <비지터>
톰 매카시 감독의 ‘비지터’
열정없는 노교수와 불법이민자
젬베 두드리며 공감의 세계로

‘음악이 인생을 바꿨다’란 말을 음악인이 아닌 평범한 직업인이 한다면 감상의 과잉일 가능성이 있다. 아무리 아름다운 음악이라도 거리에서 하루하루 벌어서 사는 불법 이민자의 처지를 실질적으로 반전시키기 어렵다. 음악이 할 수 있는 일은 한 사람의 마음에 약간의 울림을 주는 정도일 테다. 더 중요한 건, 누구와 음악을 공유하느냐다. 함께 노래하거나 음악을 들으면서 ‘나’밖에 몰랐던 좁고 단단한 일상에 작은 균열이 생기고, 그 순간을 같이 보내는 ‘너’를 바라보게 만들 수 있도록 돕는 것. 그게 음악의 힘일 테다. 8일 개봉하는 음악영화 <비지터>(감독 톰 매카시)의 주인공 월터 베일(리처드 젱킨스)이 겪은 음악의 힘이 그렇다.

월터는 미국 코네티컷의 한 대학에서 20년째 강의계획서의 연도만 수정해가며 같은 내용의 강의를 하는, 게으른 경제학 교수다. 강의에 대한 열정도 없거니와 연구에 대한 욕심도 없다. 동료의 연구 논문에 공저자로 이름을 빌려주긴 하지만 정작 자신은 연구에는 별 관심이 없다. 그렇다고 다른 취미가 있는 것도 아니다. 가정교사에게 피아노 수업을 받지만 워낙 재능이 없는 탓에 실력은 나아지지 않는다. 부인과도 사별했다. 그의 일상엔 재미라든지 생기라든지 즐거움 같은 단어로 표현할 수 있는 구석이 없다.

그러다 이름만 빌려준 논문 발표 때문에 뉴욕에 간 월터는 자기 소유의 아파트를 오랜만에 찾았다가 그곳에 살고 있는 불법 이민자 커플인 타렉(하즈 슬레이만)과 자이납(다나이 구리라)을 맞닥뜨린다. 각각 시리아와 세네갈에서 온 두 사람은 자칫 단속에 걸리기라도 하면 수용소로 보내질 처지다.

월터는 갈 곳 없는 두 사람을 아파트에 머물게 한다. 아프리카 타악기인 젬베 연주자인 타렉은 월터에게 젬베를 가르쳐 주고 유명한 젬베 연주자의 음반을 선물해준다. 무료한 노교수와 불안한 이민자는 함께 젬베를 두드리면서 친구가 되어간다. 이민자 단속에 걸린 타렉은 수용소로 들어가고, 월터는 타렉을 위해 전에 없던 열정을 내보이며 백방으로 노력하지만 일은 잘 풀리지 않는다. 타렉의 어머니 모나(히암 압바스)가 뉴욕에 오고, 월터는 그와 가까워지면서 자신과는 상관없었던 이민자의 삶에 마음 깊이 공감하게 된다.

영화 마지막, 울분에 찬 월터는 지하철역에서 젬베를 한참 두드린다. 마음을 나눴던 이민자들이 떠났다고 이 남자의 일생이 크게 달라지진 않을 것이다. 다만 이미 틈이 생겨버린 마음의 모양처럼 비스듬하게 기울어진 월터의 어깨는, 무미건조하고 단절된 삶을 사는 ‘나’에게도 아주 먼 곳에서 온 ‘나 아닌 존재들’에 마음을 열 수 있는 힘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2007년 제작돼 토론토국제영화제, 선댄스영화제 등에 초청됐다. 국내에서도 2008년 제4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폐막작으로 소개됐다.

박보미 기자 bomi@hani.co.kr

사진 조이앤컨텐츠그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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