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영화·애니

동주선생 같은 인생선배 없어 외로운 분에게

등록 2012-11-09 19:34

<완득이> (2011, 이한 감독)
<완득이> (2011, 이한 감독)
[토요판] 이승한의 몰아보기
<완득이> (2011, 이한 감독)

<오시엔>(OCN) 10일(토) 밤 10시, 11일(일) 낮 12시, 저녁 7시30분

올해도 유난히 추울까. 양평동 이씨는 길거리를 메운 학생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뭐가?” 고개를 돌리니 고양박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씨를 보고 있었다. “네?” “방금 그랬잖아. ‘올해도 유난히 추울까’라고.” “아, 수능요. 내일이잖아요. 왜, 원래 수능시험날엔 날이 춥다는 이야기가 있잖아요.” 고양박사는 커피머신 위에 서린 물기를 행주로 훔치다 멈춰서 중얼거렸다. “벌써 그렇게 됐나?”

“박사님 때도 그랬어요? 다들 대입시험 망치면 인생 더 볼 거 없다고?” 이씨의 말에 박사는 잠시 허공을 올려다보며 기억을 더듬었다. “그런 말이 없진 않았지. 이 시험 하나로 앞으로의 인생이 결정되네 어쩌네. 그런데 세상 사는 게 어디 그러니?” “그죠. 별거 없더라고요. 막상 대학 들어와도 다들 학점 관리다 뭐다 해서 취직 준비하기 바쁘고. 대학입시 설명회 참석하듯 ‘확실히 뽑히는 자기소개서 쓰는 법’ 같은 너절한 특강이나 들으러 다니고. 고등학교 때나 똑같더만요.”

갓 내린 커피를 홀짝이던 박사가 이씨의 푸념에 피식 웃었다. “그래서, 억울해?” “억울하죠! 왜 나한테는 ‘대학 그거 가봐야 그것도 결국 네 기대와는 다른 시시한 곳’이라고 솔직하게 말해준 사람이 없었을까 싶기도 하고.” 박사가 머리를 쓸어 올리며 대꾸했다. “그게 선생들 영업 비밀인데 왜 이야기해주겠니? ‘좋은 대학만 가면 뭐든 다 할 수 있다’는 마법의 주문을 왜 깨겠어?”

“그래도요. 왜, 영화 <완득이>에 나오는 동주 선생 같은 사람 있잖아요. 완득이 붙잡고 ‘넌 공부로는 애저녁에 텄으니 하고 싶어 하는 킥복싱이나 열심히 해봐라’라고 말해줄 사람요. 물론 영화니까 그런 캐릭터가 가능한 거겠지만요. 제 주변엔 대체로 <말죽거리 잔혹사>의 아버지 같은 사람뿐이었거든요. ‘대학 못 가면 잉여인간’이라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주입해주는, 그런 사람들.”

이승한 티브이평론가
이승한 티브이평론가
“글쎄, 내 눈엔 동주 선생도 386 꼰대의 다른 형태 같아 보이긴 하더라마는.” 박사는 한 박자 쉬고 이씨의 어깨 위에 손을 얹으면서 말을 이었다. “동주 선생 같은 인생 선배가 없어 외로웠다면, 네가 동주 선생 같은 사람이 되면 되잖아. 후배들에게, 동생들에게, 행복이 좋은 학벌이나 눈부신 성과에 늘 딸려 오는 패키지 상품 같은 건 아니라고 일러주는.”

이씨는 박사의 손을 제 어깨에서 내리며 투덜거렸다. “이 실망과 환멸로 어렵게 얻은 인생의 진리를 공짜로 나눠주라고요?” “응. 배웠으니 남 줘야지. 그리고 이제 너도 슬슬 완득이보단 동주 선생 나이에 더 가까워지잖아. 네가 내년에 몇 살이더라? 서른?” “박사님, 시끄러워요.”

이승한 티브이평론가

<한겨레 인기기사>

“내곡동 사저 차명매입은 불법증여 위한 것”
종묘공원 성매매 할머니 “폐지 주울 바엔 할아버지…”
새누리 김태호 “국민이 ‘홍어X’인 줄 아나” 막말
강북 아파트 팔아도 강남 전셋집 못 얻는다
정여사 말대로 파스 바꿔줘…털이 너~무 뽑혀
“마야문명 흥망 배경에 기후변화 있었다”
<강남스타일>에서 절간 스님까지 커피 열풍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