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인질링(2008,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
[토요판] 이승한의 몰아보기
체인질링(2008,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
<슈퍼액션> 24일(토) 오후 3시35분, <오시엔> 25일(일) 오전 9시 원래 이번주에 소개하려 했던 프로그램은 매우 유쾌한, 별생각 없이 웃으며 볼 수 있는 여행 프로그램이었다. 머릿속에 양평동 이씨와 그의 친구들이 나누는 대화까지 모두 짜두었고, 글로 옮기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하나 원고 마감일인 11월21일 아침, 모든 게 뒤틀렸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박정근씨가 1심에서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박씨는 트위터에서 북한 ‘우리민족끼리’ 계정의 글을 여러 차례 리트위트한 것이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는 이유로 압수수색과 구속수사를 받았다. 박씨는 가당치도 않게 거창하고 경직된 북한의 체제선전 문구가 우스꽝스러워 그를 조롱하고 비아냥거리려는 목적으로 리트위트를 했음을 설명했지만, 재판부는 ‘반국가단체에 호응하고 가세한 점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박씨는 항소를 준비중이다. 물론 원래 계획했던 프로그램을 소개하는 것도 나쁘진 않았으리라. 즐거운 프로그램을 보며 잠시나마 세상 시름을 더는 것은 좋은 일이니. 하지만 박씨의 이야기를 한 번이라도 더 알리는 게 먼저인 듯하다. 언론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를 침해하는 이 법은, 이제 무엇이 풍자이고 무엇이 고무찬양인지까지 자의적으로 판단하고 있다. 여기 <체인질링>이라는 영화가 있다. 실종된 아들을 찾아달라고 경찰에 신고를 했던 여인이, 경찰로부터 엉뚱한 아이를 돌려받았다. 여인은 이 아이는 자신의 아들이 아님을 주장했지만, 신속하게 사건을 해결한 유능한 이들로 보이고 싶었던 경찰은 여인을 조롱하고 모욕하더니, 급기야 정신이상으로 몰아 정신병원에 감금해 버렸다. 믿기 힘들겠지만, 미국에서 있었던 실화다.
박씨의 사례와 <체인질링>이 같은 경우는 아니다. 하지만 제 구미에 맞는 말들만 남기고, 나머지 말들은 새어나오지 못하게 틀어막는 국가권력이란 존재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는 되지 않겠는가. 사안과 시대, 국가는 달라도, 제 안위를 위해 한 시민을 범죄자·정신장애인으로 몰아가며 발언권을 박탈하고 감금하는 체제의 추한 민낯은 어찌 그리 닮았는지 말이다.
영화의 후반, 그간 속아왔다는 사실을 안 로스앤젤레스 시민들은 사건을 은폐하려 했던 경찰에 대해 항의시위를 열고, 박해받았던 여인 옆에 서서 정의를 촉구한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추신 하나. <체인질링>은 1920년대에 있었던 일이다. 80여년이 흐른 지금, 이 땅에선 아직도 그만큼이나 어이없는 일이 계속되고 있다.
추신 둘. 박씨 말고도 리트위트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적용받은 이가 둘이나 더 있다. 우리는 수치를 모르는 세상에 살고 있다.
이승한 티브이평론가
<슈퍼액션> 24일(토) 오후 3시35분, <오시엔> 25일(일) 오전 9시 원래 이번주에 소개하려 했던 프로그램은 매우 유쾌한, 별생각 없이 웃으며 볼 수 있는 여행 프로그램이었다. 머릿속에 양평동 이씨와 그의 친구들이 나누는 대화까지 모두 짜두었고, 글로 옮기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하나 원고 마감일인 11월21일 아침, 모든 게 뒤틀렸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박정근씨가 1심에서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박씨는 트위터에서 북한 ‘우리민족끼리’ 계정의 글을 여러 차례 리트위트한 것이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는 이유로 압수수색과 구속수사를 받았다. 박씨는 가당치도 않게 거창하고 경직된 북한의 체제선전 문구가 우스꽝스러워 그를 조롱하고 비아냥거리려는 목적으로 리트위트를 했음을 설명했지만, 재판부는 ‘반국가단체에 호응하고 가세한 점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박씨는 항소를 준비중이다. 물론 원래 계획했던 프로그램을 소개하는 것도 나쁘진 않았으리라. 즐거운 프로그램을 보며 잠시나마 세상 시름을 더는 것은 좋은 일이니. 하지만 박씨의 이야기를 한 번이라도 더 알리는 게 먼저인 듯하다. 언론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를 침해하는 이 법은, 이제 무엇이 풍자이고 무엇이 고무찬양인지까지 자의적으로 판단하고 있다. 여기 <체인질링>이라는 영화가 있다. 실종된 아들을 찾아달라고 경찰에 신고를 했던 여인이, 경찰로부터 엉뚱한 아이를 돌려받았다. 여인은 이 아이는 자신의 아들이 아님을 주장했지만, 신속하게 사건을 해결한 유능한 이들로 보이고 싶었던 경찰은 여인을 조롱하고 모욕하더니, 급기야 정신이상으로 몰아 정신병원에 감금해 버렸다. 믿기 힘들겠지만, 미국에서 있었던 실화다.
이승한 티브이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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