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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독립영화 직접 보면 참 좋은데…

등록 2012-11-25 20:02

영화감독 민용근
영화감독 민용근
민용근의 디렉터스컷ㅣ38회 서울독립영화제
이건 어쩌면 오래되고 고리타분한 선입견일 수도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많이 바뀌긴 했지만 가끔, 그러나 여전히 그런 선입견들과 마주치곤 한다. ‘독립영화’에 대한 얘기다.

지난해 대학 친구 결혼식장에서 있었던 짧은 일화 하나. 그곳에서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났고, 늘 그렇듯 서로의 근황이 오고 갔다. 졸업 뒤 오랜 시간 상업영화만을 해온 한 친구가 나에게 물었다. “너 아직도 그런 영화 하니?” “응? 그런 영화?” “너도 이제 상업영화 좀 해야지. 그런 영화만 하지 말고.” 그 친구의 애정 어린 조언을 듣고 있자니, (대충 뜻은 알았지만) 그 친구가 말한 ‘그런’ 영화가 무슨 영화인지 궁금해졌다. 친구는 잠시 생각하더니 꽤 명쾌하게 답했다. “독립영화 같은 거 있잖아. 뭔가 심오한 거 같은데 재미는 좀 없는 영화.”

아, 그렇구나. 나는 ‘뭔가 심오한 거 같지만 재미는 좀 없는 영화’를 만들며 살았구나. 나는 내 일의 정체성에 대해 새로운 개념 정립을 해야 하나 혼란스러워하던 중, 문득 억울한 심정이 들어 친구에게 한가지만 확인하고 싶었다. 최근에 본 독립영화가 어떤 것이었는지. 친구는 해맑은 얼굴로 최근에 본 독립영화는 특별히 없다고, 역시나 명쾌하게 답했다. 잠시 뒤 뷔페 음식을 가지러 자리를 뜬 친구의 해맑은 뒤통수를 보며 뭔가 설명해주고 싶은 생각들로 가득 찼지만, 불행히도 그 자리는 하객들로 붐비는 결혼식장의 식당일 뿐이었다.

물론 이와 비슷한 경험들은 수없이 많다. 독립영화에 대한 수많은 선입견들. 어려운 의미만 담고 있는 영화, 세련되지 못하고 투박한 영화, 낯설고 지루한 영화 등등. 물론 이 특징들이 독립영화가 지닌 다양한 스펙트럼의 한 부분일 수도 있겠지만, 독립영화에 대한 오해로 작용하는 것도 사실이다. 독립영화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들어봤지만, 막상 독립영화를 보지 않는 사람에게 이런 선입견들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런 오해의 순간들마다 “독립영화 … 직접 보면 참 좋은데 …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네”라는 어느 광고(CF)의 변용된 구절이 떠오르지만, 말 그대로 짧은 시간 동안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는 막막함을 동시에 느끼곤 한다.

뒤늦게나마 그런 분들에게 이 영화제를 권하고 싶다. 올해로 38회를 맞는 서울독립영화제. 한 해 동안 탄생한 수많은 독립영화를 결산하는 이 영화제엔 극영화·다큐멘터리·애니메이션·실험영화들이 장편과 단편을 총망라해 상영된다. 지난 2년간 중단되었던 정부 지원이 부활함에 따라 영화제의 규모도 대폭 확대되었고, 그 규모만큼이나 상영작의 면면도 올해 유난히 화려하다. 다양한 정치인들의 인터뷰를 기록한 연작 다큐멘터리인 개막작 <거대한 대화>를 필두로 해,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4개 부문을 수상한 <지슬>, 서울독립영화제 대상을 두번이나 수상했던 김태일 감독의 신작 <웰랑 뜨레이>,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명예집행위원장의 감독 데뷔작 <주리>(JURY), <은교>로 신인여우상을 휩쓴 김고은 주연의 단편 <영아> 등 다양한 면면을 지닌 작품들이 상영된다. 이외에도 그 어느 해보다 막강한 라인업으로 무장한 올해의 ‘독립영화’들이 관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독립영화는 과거의 선입견에 머물러 있는 영화가 아니다. 매순간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 독립영화다. 길고 구차한 말보다, 와서 직접 확인해보라 권하고 싶다. 독립영화에 대해 여전히 존재하는 선입견들을 보기 좋게 깨뜨려버릴 97편의 영화가 준비돼 있다. 새롭고, 의미 있고, 재미있는 영화에 목말라 있는 관객들에게 이 영화제는 진정, “딱이다, 딱이다!”

(올해 서울독립영화제는 광화문 인디스페이스와 압구정 씨지브이에서 29일부터 12월7일까지 열린다.)

영화감독 민용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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