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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말기암 환자 마지막 몇 달의 기록

등록 2012-11-25 20:03

다큐 영화 <엔딩 노트>
다큐 영화 <엔딩 노트>
다큐 영화 엔딩 노트
정년퇴임뒤 불현듯 닥친 간암
슬픔과 후회 대신 유쾌함 선택
버킷리스트 만들며 이별 준비

주름진 얼굴의 아내는 머리가 듬성듬성한 남편의 야윈 등을 긁어준다. 카메라 뒤의 딸은 카메라 앞의 두 사람에게 첫 만남에 대해 묻고 부부는 40년 전 겨울, 데이트 날의 기억을 끄집어낸다. 남편은 “성냥팔이 소녀처럼 옷을 입었지만 참 예뻤던” 아내의 첫인상을 놀리는 듯 말하고, 아내는 ‘성냥팔이 소녀’란 말에 가볍게 발끈한다.

불현듯 닥친 죽음을 앞두고서야 처음 “사랑해”라고 고백하는 남편과, “더 많이 사랑했어야 했는데 미안해”라고 말하는 아내의 모습은 29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엔딩 노트>(사진) 속 한 장면이다. 카메라는 말기암 선고를 받고 죽기 전에 해야 할 ‘버킷리스트’를 하나씩 실행하며 죽음을 준비하는 남자의 모습을 따라간다. 남자의 막내딸인 스나다 마미 감독이 2010년 아버지의 마지막 몇 달을 기록했다.

아버지 스나다 도모아키는 성실하고 꼼꼼한, 일본 도쿄의 전형적인 샐러리맨이다. 40년 넘게 다닌 직장에서 정년퇴임한 뒤 아내와 여생을 보내려고 하지만 갑작스레 간암 말기 판정을 받는다. 94살인 어머니보다 먼저 세상을 떠날 가능성이 높다. 살아온 날을 생각하면 “실패한 기억이 더 많다”는 그이지만 죽음을 준비하면서 슬픔이나 후회보다는 유쾌함과 여유를 택한다. “내가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죽음은) 운명이라고 생각해”라고 그는 말한다.

스나다의 버킷리스트라는 게 대단치는 않다. 신을 믿어본다든지 야당에 투표를 한다든지 하는 평생 하지 않았던 행동과, 손녀들과 힘껏 놀아주고 가족 여행을 떠나는 등 꼭 해보고 싶었던 일들이다. 자신의 장례식장을 미리 답사하고, 장례식에 초청할 사람들 명단을 세심하게 확인해 아들에게 인수인계하는 건 슬픔에 우왕좌왕할지도 모를 가족들을 위한 배려다.

<엔딩 노트>는 지난해 일본에서 개봉해 다큐멘터리로는 이례적으로 20만 관객을 모으며 흥행했다. <환상의 빛>, <원더풀 라이프>, <걸어도 걸어도> 같은 영화를 통해서 인간과 죽음의 문제를 탐구해온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제작자를 맡았다. 스나다 마미 감독은 고레에다 감독 밑에서 조연출로 일하기도 했다.

한 사람의 삶은 그 자신이 홀로 보낸 시간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관계 맺고 기억을 만들면서 ‘살아지는’ 시간이 합쳐진 총체일 테다. ‘나’의 시간은 끝나지만 40년지기 아내와 든든한 자식들, 두고 가야 하는 어머니와 마지막까지 웃음과 용기를 준 손녀들의 기억 속에서 ‘나’는 오래도록 존재하게 된다. <엔딩 노트>의 ‘엔딩’이 우리 삶에 건네는 위로이다.

박보미 기자 bomi@hani.co.kr

사진 영화사 진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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