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26년> 포스터. 왼쪽부터 배수빈, 한혜진, 진구, 임슬옹. 청아람 제공
‘5·18의 아이들’ 슬픈 분노가 통했다
1만5천명 시민후원자가 흥행 밑천
민감한 내용 ‘액션 복수극’에 담고
한혜진 등 출연해 관객층 폭넓어져
‘남영동 1985’는 30만명 기록 선전
1만5천명 시민후원자가 흥행 밑천
민감한 내용 ‘액션 복수극’에 담고
한혜진 등 출연해 관객층 폭넓어져
‘남영동 1985’는 30만명 기록 선전
영화 <26년>을 보고 나온 관객 김명희(36·학원강사)씨의 눈이 충혈돼 있었다.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의 자녀들이 유혈진압 책임자에게 총을 겨누며 절규할 때 눈물을 참기 힘들었다고 한다. 3일 낮 서울시내 극장 ‘메가박스 센트럴’에서 만난 그는 “영화에 나온 5·18 희생자 자녀 4명이 지금 내 곁에 있다면 꽉 안아주고 싶다”고 했다. “‘얼마나 마음이 아팠나요? 혼자 그 아픔을 감당하게 해서 미안해요’라고 위로해주고 싶다”며 눈시울을 다시 붉혔다. 대학생 하철민(23)씨는 “영화에서조차 전직 대통령한테 사과를 받지 못하는 것에 화가 났고, 과거를 제대로 정리하지 않으면 불행한 역사가 되풀이된다는 말의 무서움을 느꼈다”고 말했다.
시민들이 제작비를 후원한 <26년>이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2일까지 80만3187명을 모은 <26년>은 개봉 엿새째인 4일에 100만명을 돌파할 전망이다. <26년>은 개봉하자마자 흥행작 <늑대소년>을 밀어내고 ‘1일 관객수’ 선두를 지키고 있다. 상영관도 442개에서 600개 남짓으로 늘었다. 영화계에선 ‘극장 배급망을 가진 대기업이 투자·배급한 영화였다면 상영관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았을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26년>은 중소배급사 ‘인벤트 디’와 이 영화 제작사 청어람이 직접 배급했다.
최용배 청어람 대표는 이 영화의 슬픔과 분노에 관객들이 공감하고 있다고 짚었다. 그는 “영화 속의 5·18 희생자 자녀들은 너무나 안타깝고, ‘그 사람’(전두환 전 대통령)과 그를 보호하는 사회 현실에는 화가 난다는 관객들의 반응을 많이 접했다”고 말했다. 그는 “포기하지 않고 제작을 완수했는데 관객들이 응원을 해주시는 것 같다”며 고마워했다. <26년>은 4년 전 촬영 열흘을 앞두고 한 기업이 투자를 갑자기 취소한 뒤 투자자들이 잇따라 이탈하며 제작이 무산됐다. 당시 정부에서 외압을 가했다는 말이 무성했다. 하지만 순제작비 46억원 중 1만5000여 시민이 7억원을 후원하고, 가수 이승환씨가 10억원을 투자하며 힘을 보탰다. 최 대표는 “방송인 김제동씨도 후원했는데 후원금으로는 액수가 커서 본인이 사양하는데도 투자금 형식으로 바꿔 드렸다”고 했다.
이런 시민 후원자들과 관객들이 트위터 등을 통해 입소문을 내며 흥행에 불을 지피고 있다. 또 민감한 내용을 ‘액션 복수극’이란 대중적 장르로 버무린데다, 한혜진·진구 등 배우들에 대한 호감이 섞여 관객층을 폭넓게 흡수하고 있다는 게 영화계 분석이다.
정지욱 영화평론가는 “원작 만화에 비해 긴박감이 덜한 부분도 있다”면서도 “전직 대통령을 처단하러 나선다는 소재 자체가 호기심을 자극하고, 백주대로의 저격 시도와 막판 액션 장면들이 뭉클함을 준다”고 평했다.
<26년>과 함께 우리 사회의 아픈 역사를 돌아본 또 한 편의 영화 <남영동 1985>는 언론과 평단의 호평에 비하면 관객수가 많지 않지만, 고문 소재를 정면으로 다룬 영화가 지금까지 30만명을 기록한 것은 이례적으로 선전한 것이라는 평가도 있다.
영화는 고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1985년 22일 동안 고문을 당하며 국가폭력이 인간의 영혼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보여준다. 이 영화 관계자는 “김근태 선생의 수기집 <남영동>과, 최근 출간된 <민주주의자 김근태 평전>을 읽은 독자들의 모임 100여명이 극장을 대관해 보겠다고 신청했고, 먼저 영화를 본 학생들이 교사에게 요청해 학급 전체관람을 하겠다고 연락한 서울시내 고등학교 학급도 3곳 있는 등 단체관람 문의가 들어온다”고 전했다. 연출자인 정지영 감독은 “저예산 영화라 홍보·마케팅 비용이 적었고, 영화의 대중성에서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봤다. 하지만 30만명은 일부러 영화를 찾아 본 관객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에겐 소중한 숫자”라고 말했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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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남영동 1985>의 한 장면. 아우라픽쳐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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