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남영동 1985>
[토요판] 김성윤의 덕후감
사실 개인적으로 잘 이해 못하는 게 두가지 정도 있다. 돈 주고 공포영화 보는 것과 돈 주고 귀신의 집 가는 것. 물론 세상에 이해 못할 일이 넘치지만, 왜 하필 그런 경험을 돈 주고 해야 하는지에 대해선 아직도 수긍이 가지 않는다. 어차피 사는 게 공포고 죽지 못하는 게 잔혹 아닌가.
주변의 지인들은 <남영동 1985>(사진)를 보러 가지 않으려 했다. 아마도 고문의 잔혹함 때문이지 싶다. 굳이 영화를 보지 않더라도 상상할 수 있는 시각적 충격과 스트레스, 피하고 싶었을지 모른다. 나는 그 ‘괴롭힘’에 맞서고 싶었다. 어쩌면 나 자신에게 어느 정도 잔인함이 있어서 그런 장면들을 견딜 수 있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정작 영화를 보고 나선 조금 먹먹했다. 감상적 여운이 남아서라기보다는, ‘저 시절에 태어나지 않은 게 다행이야’라는 소시민적 안도감이 앞섰기 때문이다. 평상시에도 나란 인간의 비굴함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이렇게 글을 끄적거리고 대개는 비판적인 목소리로 젠체하는 게 보통이지만 나 역시도 한없이 유약한 사람이다.
그래서일까. 김근태를 모델로 삼은 주인공이 자비를 호소하고 허위 자백을 쏟아낼 때엔 약간의 위안을 얻을 수도 있다. 특히 ‘칠성판’이라는 고문받침대 위에서 전기고문을 당하고 발가벗겨져 있는 그의 모습은 압권이다. 그의 비루한 처지에 빗대어, 우리와 같은 사람이구나, 같은 고깃덩어리구나라는 걸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극악한 고문 속에서도 나 같은 관객으로 하여금 짧지 않은 영화 시간을 견디게끔 해준 건 바로 그와 같은 동조 의식이었다.
그렇지만 <남영동 1985>가 가하는 진짜 괴롭힘은 다른 데 있었다. 그렇게 긴 고문이 끝날 즈음, 영화는 (일종의 오마주와도 같은) 이중적 아이러니를 보여주면서 심적 괴롭힘을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 <밀양>에서 보았듯이, 피해자의 의지와 상관없이 가해자가 죄 사함을 얻었을 때 우리는 그를 용서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보았듯이, 진짜 죄인은 카메라 프레임 안에 있는 게 아니라 객석에 있는 우리들 중 누군가가 아닌가.
실제로 고문기술자 이근안이 복역을 마치고 성직자가 됐을 때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라도 이 첫번째 아이러니를 실감할 수 있었을 것이다. 피해자가 가해자와 같은 인격이 되기 싫어 용서와 화해를 하고 싶은데, 정작 가해자는 피해자의 용서 없이도 초월적 존재로부터 사죄를 받아버린 상황이다. 게다가 가해자가 ‘당시의 시대적 상황이 나로 하여금 죄를 짓게 했고 따라서 나 역시도 피해자’라고 항변한다면 우리는 어찌할 수 있을까.
주인공이 카메라를 응시하는 마지막 장면은 그래서 기묘하다. 왜냐하면 그의 시선은 ‘극장 안에 범인 있지?’ 하는 추궁에 더하여 ‘이런 상황을 어찌해야 합니까?’라는 질문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분노나 갈구, 어느 쪽으로도 해석 내릴 수 없는 이 눈빛은 결국 피해자의 원한은 씻기지 않는데 복수는커녕 용서조차 쉽지 않은 실제적 아이러니를 그대로 담고 있는 셈이다.
이 영화의 미덕은 우리에게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하다못해 투표를 통해 세상을 바꾸라거나 지금 당장 짱돌을 들고 나가라는 메시지도 없다(물론 정지영 감독은 관객과의 대화 시간엔 젊은이들이 뭐라도 해야 한다고 말하곤 한다). 답이 없는 영화는 그래서 더 괴로운 법이다. 그러니 그런 괴로움이 싫은 독자들이라면 <26년> 같은 암살 시도 액션영화를 보면 될 일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유의 곤궁을 체험하고 싶은 독자들이라면 <남영동 1985>를 보기 바란다.
김성윤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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