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드런 오브 맨>(2006)
[토요판] 김세윤의 재미핥기
초고층 빌딩들이 산처럼 솟아 있다. 그 산과 산을 잇는 구름다리가 아찔하게 걸쳐 있다. 간간이 보이는 기와지붕 위로 띄엄띄엄 자동차가 날아다닌다. 영화 <클라우드 아틀라스>가 상상하는 서울의 미래다. 보도자료에 따르면 “2144년 네오 서울(Neo Seoul)은 해수면 상승으로 바다에 잠겨버린 아시아”의 중심 도시가 된다. “모든 아시아 사람들이 서울로 모이고 언어와 문화가 온통 뒤섞이는데 다른 언어들은 점점 사어(死語)가 되는 반면, 한국어는 영어와 함께 전세계 공통어로 사용”된다고도 했다.
많은 한국인이 은밀하게 품고 있는 일본침몰의 염원과 더 많은 한국인이 하나도 안 은밀하게, 아주 노골적으로 품고 있는 강성대국의 열망을 스크린에 구현하느라 애써주신 워쇼스키 남매의 노고는 크게 치하해야겠으나, 이것이 진짜 한국의 미래일 거라고 천연덕스럽게 이야기하는 그들의 패기에 자꾸 웃음만 났다. 풉. 정말 132년 뒤엔 저절로 글로벌 경제·문화 허브의 시민이 되는 거임? 한글만 읽고 쓸 줄 알면 먹고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는 거임?
하필이면 <클라우드 아틀라스> 시사회가, 18대 대통령 선거 투표일 다음날이어서 그랬을지 모른다. 5년 뒤의 미래도 충분히 아득했던 그날에, 132년 뒤 미래는 결코 오지 않을 시간처럼 느껴졌겠지. 그래서 방금 보고 나온 2144년의 서울 대신, 몇해 전 본 다른 영화 속 미래 도시가 자꾸 머릿속을 맴돈 것이겠지. “2030 세대 유권자 수 감소” “5060 세대의 역습” 따위 선거 분석 기사 때문에 더 그 영화가 생각난 것이겠지. 충분히 가까운 미래, 그래서 충분히 공감하고 걱정하게 만든 미래. 콕 집어 대한민국의 미래라고 말하지 않는데도, 어째 이것이야말로 진짜 이 나라의 미래일 것만 같아서 보는 내내 심장이 쫄깃해지던 그 영화.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칠드런 오브 맨>(2006·사진)이다.
서기 2027년. 지금으로부터 겨우 15년 뒤. 전세계 사람들은 더이상 어린아이의 울음소리를 듣지 못한다. 18년째 아이를 낳은 여성이 없기 때문이다. 단 한 아이도.
마지막 남은 18살 청년마저 세상을 떠나면서 모든 인류가 실의에 빠진 2027년의 어느 날. 왕년의 운동권 지식인, 지금은 그냥 직장인 테오(클라이브 오언)가 괴한들에게 납치된다. 알고 보니 인권단체 회원들. 테오 앞에 한 흑인 여자를 데려오는데… 웁스! 아이를 가진 여자다. 18년 만에 이런 희망은 처음 본다며 깜짝 놀라는 테오. 내 한 목숨 바쳐 아이 엄마를 보호할 테오! 아이를 노리고 달려드는 수많은 세력들에 맞서 꿋꿋하게 사투를 벌일 테오!
얼마 전 기획재정부는 한국이 2026년에 초고령사회(노인인구 비율 20%)로 진입할 거라고 예측했다. <칠드런 오브 맨>에 따르면 그로부터 1년 후에, 지구는 초고령사회 정도가 아니라 아예 그냥 다 고령사회로 접어든다. 이유는 속시원히 밝혀주지 않는다. 하지만 젊은이들의 씨가 마르고 나서야 뒤늦게 ‘젊은것’들의 소중함을 깨닫고 있는 사람들에겐 그 이유를 따질 여유조차 없다. 이미 연금 재정은 바닥났고, 사는 건 악다구니가 되었다. 진즉에 ‘쪽수’에서 밀린 청년들에게 시대교체의 희망 따위가 있을 리 없다. 약탈과 테러, 폭동과 전쟁. 지금으로부터 15년 뒤의 세상은 그렇게 망해가는 중이다.
개봉 당시 수많은 해외 언론이 그해 최고의 영화로 뽑은 이 멋진 영화가 한국에서는 개봉도 못하고 디브이디(DVD)로 직행했다. 이제라도 이 영화를 찾아보고 함께 기도했으면 좋겠다. 저출산 고령화 사회의 가장 극단적인 결말이 부디 우리의 미래가 되지 않기를. 젊은이들이 완전히 좌절하고 나서야 뒤늦게 ‘젊은것’들의 소중함을 깨닫는 사람들이 부디 미래의 우리는 아니기를. 15년 뒤에도, 아니 일단은 5년 뒤에라도 이 나라가 부디 영화보다는 살 만한 곳이기를.
김세윤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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