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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과거의 망령과 신시대의 괴물’, 맞서 싸울 이는…

등록 2013-01-04 19:39수정 2013-07-15 16:29

영화 <바람의 검심>
영화 <바람의 검심>
[토요판] 김성윤의 덕후감
‘새로운 시대’를 다룬 영화 <바람의 검심>. 원작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본 독자들이라면 익히 알겠지만, 이 영화는 일본 메이지유신의 혁명 정국 속에서 ‘살인검’으로 유명했던 히무라 켄신이 유신 직후 불살(不殺)을 다짐하며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유신과 더불어 세상은 바뀌었다. 에도는 도쿄로 지명이 바뀌고 서구의 현대 문물이 유입되기 시작했다. 법의 시대가 도래했기에 사무라이들은 더 이상 칼을 차고 다닐 수 없게 됐고, 막부 말기에 치안을 담당했던 신센구미도 경찰 조직으로 현대화됐다. 이런 시대적 배경 속에서 ‘히토키리 밧토사이’, 즉 사람 베는 발도의 명수로 활약했던 켄신 역시도 살인이 불가능한 ‘역날검’을 가지고 다닌다.

메이지유신과 근대화. 그러나 공교롭게도 일거의 혁명을 통해 모든 답이 내려졌다고 생각했던 순간 새로운 문제들이 터져 나오기 시작한다. 주인공 켄신은 두 적과 마주하게 된다. 하나는 막부 시대의 망령이고 다른 하나는 신시대(新時代)의 괴물이다. 새로운 시대라는 수사가 나름의 적합성을 가진다면 바로 이 정도일 것이다. 당분간 사람들은 비동시적인 것들을 동시적으로 경험해야 하는 분열증적 체험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피의 비를 내리게 하는 히토키리다.” 수도 없이 사람을 참했던 켄신이지만 그만큼 업보도 많을 수밖에 없다. 악역 진에가 광기에 사로잡혀 있는 것도 바로 그런 맥락에서이다. 밧토사이의 명성에 도전하기 위해 켄신을 걸고넘어지지만 사실 그의 모든 행동은 도착에 가깝다. 우여곡절 끝에 켄신은 진에를 제압하고 진에는 사무라이답게 자결을 택한다. 그런데 진에의 죽음은 비장하다기보다는 차라리 희열로 가득 차 있다. 적어도 자결의 순간에 그의 주관적 시간 경험은 유신 시대가 아니라 막부 시대로 돌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신시대인 만큼 문젯거리들도 진화할 수밖에 없다. 아편을 조제해 막대한 부를 축적하고 일본뿐 아니라 세계를 장악하려는 간류의 음모는 신시대가 평화 대신 여전히 폭력에 의해 지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달라진 점은 그 폭력을 다루는 방식 정도일 뿐이다. 옛날 같았으면 신센구미를 투입해 무력으로 진압하면 될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경찰은 확실한 혐의를 가지고 영장을 들고 찾아가야 할 정도로 사정이 복잡해졌다. 눈에 띄는 혐의는 재력에 바탕을 둔 무력과 권력으로 세탁하면 그뿐 아니던가.

그렇다면 이렇게 새롭게 배치된 폭력에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 걸까. 문제는 커지고 있지만 해결할 사람이 없다면. 켄신이 10여년간의 유랑을 멈추고 세계 안으로 재진입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카오루, 사노스케, 메구미, 야히코 등과 모여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꾸리고 적들에 맞선다. 이러한 구도는 비교적 의미심장하다. 경찰이 할 수 없는 일들을 결국 이들 소시민이 대리-수행하고 있지 않은가.

김성윤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
김성윤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
지배질서가 싸질러 놓은 문제지만 국가는 대체로 무기력해서 시민사회가 직접 해결에 나서야 하는 구도. 이것이 바로 우리가 사는 ‘새로운 시대’의 숙명일지도 모르겠다. 그것도 피의 비를 내리게 하던 살인검이 아니라, 불살의 정신으로 ‘너’ 그리고 우리를 ‘지키는’ 활인검(活人劍)으로써 싸워야만 한다. 게다가 켄신의 십자(十字) 상처처럼 ‘과거의 망령’은 도무지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역날검으로 상대할 수밖에 없는 ‘신시대의 괴물’은 종잡을 수조차 없을 정도로 진화한다.

우리는 과연 우리를 지킬 수 있을까. 이번 영화가 3부작 중 1부에 해당한다고 하니 앞으로 어떤 행보가 있을지 궁금해진다. 원작에 따르면, 근대화 이후에 출현한 신시대의 괴물은 초점에서 사라지고 이후의 켄신은 과거의 망령과만 싸우게 될 터이다. 물론 대다수 관객들은 이 사실을 문제 삼지는 않을 듯하다. 과거와 싸우는 것만으로도 벅찰 테니까.

김성윤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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