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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사람이 신념으로만 살아갈 수 있을까요”

등록 2013-01-27 19:54수정 2013-01-28 09:27

류승완(40) 감독
류승완(40) 감독
‘베를린’ 류승완 감독
신념 깨진 사람들 이야기 뼈대로
정체성 잃은 비운의 북한 스파이
조직에서 존재 찾는 한국의 중년
악한 권력·소중한 주변사람 담아

베를린은 20세기 냉전의 상징
홀로코스트 묘지 본 뒤 로케 결정
관객마다 다른 베를린 남게 될 것

“300명의 관객이 <베를린>을 보고 나면 300개의 <베를린>이 존재하게 된다고 생각해요.”

24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베를린>(29일 개봉)의 류승완(40) 감독은 영화의 메시지에 대해 말을 더하지는 않았다. 영화를 받아들이는 건 관객 각자의 몫이라면서, ‘왜 베를린이었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베를린은 20세기 냉전의 상징이고 동백림 사건이나 최은희·신상옥 사건 등 우리와도 관계가 깊죠. 송두율 교수의 이야기를 다룬 <경계도시>도 있고요. (2011년 베를린영화제에 갔다가) 유대인 학살을 반성하고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묘지에 간 게 결정적인 계기였어요.”

류 감독은 ‘표종성’(하정우), ‘정진수’(한석규), ‘동명수’(류승범), ‘련정희’(전지현)라는 네 인물을 만들면서 품었던 마음과 질문들, 그리고 그들에게 반영하고 싶었던 것을 들려주었다. 류 감독의 ‘인물 소개서’를 참고하고 <베를린>을 봐도 좋을 것 같다.

“신념을 갖고 살던 사람들이 신념에 균열이 갔을 때의 이야기예요.” 북한 정보국의 기계 같은 요원 표종성과, ‘빨갱이’를 경멸하는 남한 정보요원 정진수에 대한 설명이다. “과연 사람이 신념으로 살아갈 수 있는가, 사람은 신념하고가 아니라 사람하고 살아가는 게 아닌가 질문하게 됐죠. 그게 궁극적인 메시지는 아니지만요.”

류 감독은 표종성을 “(소설 <몽테크리스토 백작>의) 에드몽 당테스의 운명을 가진 북한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처음엔 산업스파이 이야기를 준비하던 그가 방향을 틀면서 만들어낸 인물이라고 했다. “자기 정체를 숨기고 사는, 어디로도 돌아가지 못하는 운명의 스파이”라는데, <베를린>은 표종성이 그러한 운명에 놓이기까지의 과정이다. 정진수에 대해선 “조직과 끊어지면 존재 자체가 끝난다고 생각하는, 중년의 한국 남자”라고 설명했다. “왜 일을 하는지는 모르지만, 일을 해야 자기를 증명할 수 있죠. ‘일하는 데 무슨 이유가 있냐. 내 일이니까 그냥 하는 거지’란 정진수의 말은 우리 주변 중년들 대부분의 모습이거든요. 정진수가 온전히 자기 의지로 하는 일은 생일날 한국 식당을 찾아가 미역국을 먹는 것밖에 없어요.”

류 감독은 친동생 류승범이 특유의 캐릭터 연기를 선보인, 북한 고위층의 아들이자 권력욕 강한 동명수에 대해선 “성악설에 기반한 악”이라고 설명했다.

“매력적인 개인과, 개인이 권력을 등에 업고 일으키는 충돌을 그리고 싶었어요. 체제가 개인을 억압하는 이야기는 사실 이런 영화에서 쉽게 예상하는 틀일 텐데, 그동안 많이 나왔잖아요?”

전지현이 연기한, 표종성의 아내 련정희는 짐승처럼 씩씩거리는 남자들 틈에서 속으로 분노를 삭이며 관객의 감정을 건드린다. 류 감독은 련정희·표종성과 관련해 “항상 가까이 있어서 (그 소중함을) 모르고 지냈던 사람을 놓치고 나서 뒤늦게 후회하게 되는 사람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했다.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 같은 스파이 소설도 참고했지만, 실제 만났던 사람들에게서 영화의 디테일을 포착했다. 그 일부는 2011년 그가 연출한 문화방송 다큐 <타임-간첩편>에서 보여줬다. “방송 다큐엔 나오지 못한 사람들에게 더 큰 도움을 얻었어요. 여전히 신념을 안고 사는 북한 장교 출신 탈북자나 과거 정보국 직원 등 방송에 공개되면 안 되는 사람들이었어요.”

그는 총, 통조림 깡통, 맨주먹을 총동원하는 액션의 와중에 잊지 않으려 한 건 ‘사람의 고통’이라고 했다. “액션을 과시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어요. 인물의 고통을 사실감 있게 표현하고 싶었어요. 보통은 영화에서 사람이 테이블에 떨어지면 테이블이 부서지는데, <베를린>에선 모서리에 찍히거나 철재에 부딪쳐 튕겨 나가요. 몸이 부서지는 느낌이 들게끔 하되 그 표현이 폭력적이라기보다는, 훈련이 몸에 밴 사람들의 반사행동을 지켜보는 느낌을 관객이 갖길 바랐어요. 싸움이라기보단 훈련받은 사람들끼리의 ‘행위’요.”

글 박보미 기자 bomi@hani.co.kr

사진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관련영상] 류승완 감독 “전지현 외롭게 만들라고 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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