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남자사용설명서’ 배우 겸 복서 이시영
운동화를 신고, 트레이닝복을 입은 배우 이시영(31)과 카페에서 마주앉았다. 며칠간 언론사별로 50분씩 돌아가며 영화 개봉 전 인터뷰를 했는데, “이제 마지막 인터뷰”라며 사진촬영용 대신 편한 옷으로 갈아입었다고 한다. 누가 이 모습을 본다면, 사각 링에서 막 경기를 끝내고 인터뷰에 응하는 ‘복서 이시영’을 떠올릴지 모를 일이었다. “권투를 진심으로 좋아하고, 내 인생의 중요한 부분이 됐다”는 그도 권투 관련 질문을 피하며 방어 자세를 취하진 않았다.
“많은 분들이 제가 집념도 강하고, 독할 것 같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겁도 많고 독하지도 못한 편이에요.”
오히려 그는 “의지가 약해서 더 권투를 하게 된다”고 했다. 그는 ‘의지의 한계점’이란 말을 썼다.
“누구나 자신의 한계점이 있지만, 한계점은 자기 스스로에 의해 정해진다고 생각해요. 더 할 수 있는데, 거기서 멈추면 그게 한계점이 되는 거죠. 저도 의지의 한계점이 낮았어요. 그 한계점을 조금 더, 조금 더 높여보자는 생각으로 복싱을 계속 하고 있죠.”
그는 ‘여배우가 얼굴을 맞아야 하는 운동을 왜 하나?’란 시선을 많이 받는다. 그는 이렇게 답했다. “복싱은 자기와의 싸움이죠. 링에서 경기하는 동안 도와주는 사람이 없어요. 내가 견뎌내야 하는 시간이죠. 경기가 끝나면 승부에 관계없이 ‘무서웠지만, 내가 견뎌냈구나’, 그런 기분이 들거든요.”
6일 만난 이시영은 지난달 말 인천시청복싱팀에 입단해 실업팀 선수까지 됐다. 2010년 여성 복서를 소재로 한 단막극 여주인공을 맡아 권투를 배우기 시작했고, 드라마는 결국 제작이 무산됐는데도 권투를 멈추지 않았다. 복서로서 긴 팔이 장점인 그는 2011년 3월 전국여자신인 아마추어복싱대회, 같은 해 11월 회장배 전국아마복싱대회에서 우승했다. 지난해 12월 국가대표 선발전 결승에서 진 그는 오는 10월 전국체전과 내년에 열리는 인천아시안게임 국가대표 선발전에 나설 계획이다. 그는 “인천시청 실업팀이 (배우 활동을 위해) 스케줄을 배려해주고 있는데, 잘 조절해서 훈련 스케줄도 성실히 따를 생각”이라고 했다.
링 밖 여배우로서 그는 주인공을 맡은 영화를 내놓는다. 이전 영화들보다 출연분량이 많고 극을 이끌어가는 역할이어서, 그가 “2008년 데뷔 후 사실상의 첫 주인공”이라 말하는 작품이다. 14일 개봉하는 <남자사용설명서>(감독 이원석)는 광고계 조감독 ‘최보나’(이시영)가 남자들 사이에서 기를 펴지 못하다, 우연히 구한 ‘남자사용설명서’ 비디오테이프의 지도법을 실생활에 적용하면서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는 로맨틱코미디 영화다. 영화의 모든 사건에 등장하며 극을 이끄는 이시영과, 찌질한 한류스타 ‘이승재’ 역을 맡은 오정세가 서로 충돌하다 애정이 싹트는 과정에서 웃음을 자아낸다. 만화 같은 삽화, 컴퓨터 그래픽들을 삽입해 영화를 촌스럽게 보이도록 만들었는데, ‘치밀하게 연출된 엉성함’이 영화에 독특한 개성을 부여한다.
이시영은 “감독님이 웰메이드 코미디를 만들고 싶다고 해서, 촌스러운데 세련된 코미디처럼 보이는 새로운 시도의 영화에 참여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영화 속 ‘보나’는 자기 일에 대해 준비된 사람이고, 사랑받을 만한 매력이 있는데도 인정받지 못하면서 피해의식과 열등의식이 생겼지만 조금씩 자신의 능력과 매력을 깨닫게 되는 인물”이라고 말했다.
‘보나’를 설명하다, 그는 자신의 얘기로 돌아왔다. “26살에 늦게 데뷔했지만 여러 작품을 할 수 있었고, 복싱도 하고 있죠. 늦었다고 생각하는 나이에 꿈이 생길 수 있다는 게 신기해요. 보통 도전이란 말의 무게감 때문에 망설이게 되는데, 막상 해보면 ‘충분히 해볼 만한데’란 생각이 드는 것 같아요. 제가 연기자로서 어떻게 성장할지, 운동으로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기대가 커요.”
카페 탁자에 놓인 딸기 몇개를 집던 그의 손은 인터뷰 이틀 전, 온라인에서 ‘이시영 (주먹) 굳은살 포착’이란 제목의 사진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는 “열악한 환경에서도 열심히 운동하는 다른 복싱 선수들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닌데, 그런 얘기가 나올 때마다 민망하다”며 쑥스러워했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사진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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