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로 돌아온 최민식
‘연민’이라고 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좀 거창할지 모르지만, 제가 연기를 하는 근간은 연민이에요, 연민.”
그는 연민이란 자신이 무엇을 사랑했는지, 어떤 사람이었는지, 인생 중반을 넘긴 사람들의 ‘잃어버린 감성’을 회복하고 싶은 열망과 통한다고 했다. “아줌마 아저씨들의 ‘찐~한’ 멜로영화를 하고 싶다고 그렇게 떠들고 다니는 것도 그래서 그런 거예요. 그런데도 아직 (작품이) 안 들어오네요.”(웃음)
지난해 초 470만 관객을 모은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 이후 1년 만에 새 영화 <신세계>(21일 개봉)로 돌아온 배우 최민식(51)을 7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단지 이성 간의 사랑이 아니라 연령과 계층에 상관없이 감성을 회복하는 이야기를 해 보고 싶은 거죠. 그 여자, 그리고 그 남자를 통해서 잊고 있던 감성을 회복하는 것. 나한테 그런 감성이 존재하는구나 깨닫는 거요.”
‘연민’과 ‘회복’의 멜로에 대한 갈증을 마음 한켠에 묻어둔 채 그가 먼저 선보이게 된 영화 <신세계>는 경찰과 조직폭력배의 세계를 누아르풍으로 그린 액션영화다. 영화 내내 선혈이 낭자한데, 2010년 <부당거래>(류승완 감독)와 <악마를 보았다>(김지운 감독)의 각본을 쓴 박훈정 감독이 각본을 쓰고 연출했다.
이 영화에서 그는 경찰 ‘강 과장’ 역을 맡았다. 자신의 부하인 ‘이지성’(이정재)을 조직폭력 단체 ‘골드문’에 잠입시키는 인물이다. ‘신세계’는 이지성을 골드문에 밀어넣고 펼치는 작전명이다. 6년 동안 조폭 세계에 위장 잠입해 있으면서 이지성은 자신이 형님으로 모시는 ‘정청’(황정민)과 진한 우정을 나누고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느낀다.
이성간의 사랑 그런 것 말고
‘잃어버린 감성’ 되찾는 멜로
언젠가 하고 싶은데 섭외 안와 이번 영화서 경찰 ‘강 과장’ 역할
맹목적이고 냉혹해 연민 못느껴
튀지 않고 바닥에 슥~깔렸죠 강 과장은 골드문을 와해시키기 위해 이지성의 불만을 묵살하고 또다른 후배 경찰들의 희생도 감수한다. 최민식은 강 과장을 “목적에 중독된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자신이 맡은 인물에 대한 연민이 중요한 그이지만, 맹목적이고 냉혹한 경찰 ‘강 과장’에게선 크게 연민을 느끼진 못했다고 한다. 그래도 “그런 사람도 있다는 걸 이해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는 이 영화에 이정재와 황정민을 캐스팅하는 데 발벗고 나섰다. 이정재는 그의 전화를 받고 출연 계약 단계에 있던 드라마도 보류한 채 <신세계>에 합류했다. 이렇게 나선 건 박훈정 감독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다고 했다. “그 친구, 글이 좋아요. 사족이 별로 없어요. <악마를 보았다> 때 반했어요. 시나리오 단계의 제목은 <아열대의 밤>이었는데, 제목 죽이잖아요? 시나리오가 정말 좋았어요. 이번엔 조직폭력단에 숨어든 경찰 이야기라길래, 처음엔 ‘그거 <무간도>잖아’ 했는데, 읽어보니까 이지성과 정청, 강 과장이라는 세 축이 만들어지면서 전개되는 게 딱 좋더라고요.” 그의 말처럼 <신세계>는 이정재와 황정민, 최민식이 각기 확연히 다르면서도 인상적인 캐릭터를 그려내는 영화다. <범죄와의 전쟁>에 비하면 <신세계>에서 최민식이 화면에 나타나는 비중은 눈에 띄게 줄었다. 강 과장은 극 전개상 첫번째 주인공인 이지성이나 코믹함과 잔인함을 함께 지닌 정청에 비해 도드라지는 인물도 아니다. “강 과장마저 도드라지면 부담스러웠을 거예요. 영화 속 여러 요소에 (강 과장이) 원인 제공자로서 ‘슥’ 깔려 있는 거죠. 테이블 아래 깔린 바닥 색깔이 톤을 만들듯이, 저는 밑에 깔려 있으면 되는 거거든요.” 그는 준비 과정에선 감독과 충분히 얘기를 나누며 인간적인 유대를 쌓지만, 촬영에 들어간 뒤엔 “(감독에게) 브레이크를 걸지 않는다”고 했다. “개성 강하고 천상천하 유아독존으로 사는 사람들이 우리(영화인들)예요. 그런 아티스트들의 지휘자는 감독이죠.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에요. 의견 충돌이 있고 싸울 순 있지만 최종 결정은 감독이 하는 거죠. 갈수록 작품(연기)을 하고 싶은 욕망이 커지고 자신감도 생겨요. 영화 현장에선 진정성 있게 만들면 돼요. 그냥 나는 이 작업을 열심히 하면 돼요.” ‘진정성’ 같은 추상적인 단어도 최민식의 입에서 나올 때는 그의 희끗한 머리칼과 눈가의 주름살, 푸근한 뱃살과 겹치면서 구체성을 띠는 것처럼 느껴졌다. ‘연기’와 자신이 연기하는 ‘사람’에 대한 그의 말은 좋은 연기자는 삶의 구체성에 천착하는 사람이란 걸 새삼 깨닫게 하는 힘이 있는 듯했다. 그가 언젠가 보여줄 “찐~한 멜로”가 기대된다. 박보미 기자 bomi@hani.co.kr [관련 영상] <신세계> 이정재 “최민식 선배가 직접 캐스팅”
‘잃어버린 감성’ 되찾는 멜로
언젠가 하고 싶은데 섭외 안와 이번 영화서 경찰 ‘강 과장’ 역할
맹목적이고 냉혹해 연민 못느껴
튀지 않고 바닥에 슥~깔렸죠 강 과장은 골드문을 와해시키기 위해 이지성의 불만을 묵살하고 또다른 후배 경찰들의 희생도 감수한다. 최민식은 강 과장을 “목적에 중독된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자신이 맡은 인물에 대한 연민이 중요한 그이지만, 맹목적이고 냉혹한 경찰 ‘강 과장’에게선 크게 연민을 느끼진 못했다고 한다. 그래도 “그런 사람도 있다는 걸 이해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는 이 영화에 이정재와 황정민을 캐스팅하는 데 발벗고 나섰다. 이정재는 그의 전화를 받고 출연 계약 단계에 있던 드라마도 보류한 채 <신세계>에 합류했다. 이렇게 나선 건 박훈정 감독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다고 했다. “그 친구, 글이 좋아요. 사족이 별로 없어요. <악마를 보았다> 때 반했어요. 시나리오 단계의 제목은 <아열대의 밤>이었는데, 제목 죽이잖아요? 시나리오가 정말 좋았어요. 이번엔 조직폭력단에 숨어든 경찰 이야기라길래, 처음엔 ‘그거 <무간도>잖아’ 했는데, 읽어보니까 이지성과 정청, 강 과장이라는 세 축이 만들어지면서 전개되는 게 딱 좋더라고요.” 그의 말처럼 <신세계>는 이정재와 황정민, 최민식이 각기 확연히 다르면서도 인상적인 캐릭터를 그려내는 영화다. <범죄와의 전쟁>에 비하면 <신세계>에서 최민식이 화면에 나타나는 비중은 눈에 띄게 줄었다. 강 과장은 극 전개상 첫번째 주인공인 이지성이나 코믹함과 잔인함을 함께 지닌 정청에 비해 도드라지는 인물도 아니다. “강 과장마저 도드라지면 부담스러웠을 거예요. 영화 속 여러 요소에 (강 과장이) 원인 제공자로서 ‘슥’ 깔려 있는 거죠. 테이블 아래 깔린 바닥 색깔이 톤을 만들듯이, 저는 밑에 깔려 있으면 되는 거거든요.” 그는 준비 과정에선 감독과 충분히 얘기를 나누며 인간적인 유대를 쌓지만, 촬영에 들어간 뒤엔 “(감독에게) 브레이크를 걸지 않는다”고 했다. “개성 강하고 천상천하 유아독존으로 사는 사람들이 우리(영화인들)예요. 그런 아티스트들의 지휘자는 감독이죠.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에요. 의견 충돌이 있고 싸울 순 있지만 최종 결정은 감독이 하는 거죠. 갈수록 작품(연기)을 하고 싶은 욕망이 커지고 자신감도 생겨요. 영화 현장에선 진정성 있게 만들면 돼요. 그냥 나는 이 작업을 열심히 하면 돼요.” ‘진정성’ 같은 추상적인 단어도 최민식의 입에서 나올 때는 그의 희끗한 머리칼과 눈가의 주름살, 푸근한 뱃살과 겹치면서 구체성을 띠는 것처럼 느껴졌다. ‘연기’와 자신이 연기하는 ‘사람’에 대한 그의 말은 좋은 연기자는 삶의 구체성에 천착하는 사람이란 걸 새삼 깨닫게 하는 힘이 있는 듯했다. 그가 언젠가 보여줄 “찐~한 멜로”가 기대된다. 박보미 기자 bomi@hani.co.kr [관련 영상] <신세계> 이정재 “최민식 선배가 직접 캐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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