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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공동체서 ‘낙인’찍힌다는 것

등록 2013-02-22 19:31수정 2013-07-15 16:20

영화 <더 헌트>
영화 <더 헌트>
[토요판] 김성윤의 덕후감
옆집에 포크가 몇 개 있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촘촘한 덴마크의 어느 마을. 한 아이가 유치원 선생님을 좋아했다. 엄마 아빠는 만날 싸우기만 하는데 자기를 돌봐주는 건 그 아저씨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입 맞췄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하트 모양 펜던트도 줬다. 그런데 뜻밖에도 거절당했다. “입뽀뽀는 엄마 아빠한테 하렴.” 꼬마는 뿔이 났다. 그래서 유치원 원장님한테 코를 씰룩거리며 거짓을 고했다. “그 선생님이 꼿꼿이 선 꼬추를 보여주고 나한테 하트 펜던트도 줬어요.” 소문이 퍼졌다. 선생님은 졸지에 아동 성도착증 환자로 몰렸고 이윽고 ‘마녀사냥’이 시작됐다.

영화 <더 헌트>(사진)는 아이가 무심코 뱉은 거짓말이 마을 전체의 집단적 광기를 초래하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러면서 감독은 우리 시대의 통념 두가지를 비틀어놓았다. 하나는 ‘어린이의 말이 반드시 진실’만은 아니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공동체가 해답’일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어린이를 순수의 결정체로 보는 관습은 사실 ‘어린이는 순수해야 한다’는 어른들의 기대감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실제의 아이들은 환상과 상상력 그리고 억눌린 기억 속에서 저마다의 세계에 살고 있다. “정말 그런 일이 있었니?” 확인차 묻는 말에 아이가 답한다. “잘 몰라요. 아저씨가 저한테 나쁜 짓을 했대요.” 그러나 사달은 이미 시작됐다. “괜찮아. 그건 네 무의식이 널 어지럽게 만든 것뿐이야.” 이제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게 됐다.

영화는 주인공 루카스를 중심으로 마녀사냥을 간접체험하게 한다. 변태로 몰린 통에 믿었던 친구들은 등을 돌렸고 여자친구마저 떠나보냈다. 일자리를 잃은 건 물론이고 동네 슈퍼에서도 쫓겨나기 일쑤. 한밤중에는 돌덩이가 날아와 창문이 깨졌다. 영화는 우리를 곤궁으로 몰아넣는다. 이래도 공동체가, 시민사회가 해답이겠는가.

이 영화의 배경이 덴마크라는 점은 다소 역설적이다. 덴마크는 국가별 행복지수 조사를 하면 최상위권을 장식하는 나라, 한국인들이 가장 닮고 싶어 하는 사회모델로서 북유럽 국가 중 하나가 아닌가. 그렇지만 2011년 가장 충격적인 총기난사 사건이 노르웨이에서 일어났다는 점 등을 생각해보면 감독이 던지는 의문들이 조금은 이해가 되기도 한다. 세상 어느 곳에도 유토피아는 없다는 것.

슈퍼마켓에서 마을 사람들로부터 폭행을 당한 그날 밤, 크리스마스 예배에 찾아가 ‘깽판’을 치는 장면은 그래서 더 극적이다. 그것도 하필 ‘순수한’ 어린이들의 합창 도중에. 슈퍼마켓은 문자 그대로 경제의 공간이고, 교회는 신에게 제물을 바치는 모임으로서 가장 사회적인 공간이 아니던가(과거 한자문화권에서 사회(社會)라는 말은 토지 신에게 제사 지내는 모임을 뜻했다). 경제가 됐든 사회가 됐든 외부자로 전락한 이상, 루카스는 공동체의 신성함을 수호하기 위한 희생제물, 사냥감이 될 수밖에 없다.

김성윤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
김성윤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
오늘날 위기의 해답이 사회적인 것에 있다고 믿는 풍조가 만연한 것에 비춰보자면, <더 헌트>는 그 사회적인 것은 해답이 아니라 새로운 문제일 뿐이라는 점을 가리키는 듯하다. 사회적 경제, 기업의 사회적 책임, 사회책임투자, 소셜네트워크, 관계미학, 사회복지 등등, 얼핏 보면 배제된 자들을 포용하는 노력처럼 보이지만, 영화는 가장 사회적이라는 덴마크에서마저 선긋기와 배제가 결코 사라지지 않음을 보여준 셈이다.

물론 우리 입장에선 북유럽 사람들이 누리는 소소한 행복감마저도 부럽지만, 그래도 이와 같은 곤궁을 체험하고 싶은 독자라면 꼭 한번 봐야 할 영화가 아닌가 싶다.

김성윤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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