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용근 영화감독
민용근의 디렉터스컷
그해는 여러모로 우울한 한 해였다. 일병 진급 휴가 이후 7개월간 휴가도 못 나갔고, 6월엔 연평해전이 일어나 완전무장을 한 채 부대에 대기하며 전쟁에 대한 두려움을 실감해야만 했다. 외환위기(IMF)의 여파로 입대를 택한 인원들이 많았던 관계로 내 위 고참들은 빼곡히 차 있었고, 심지어 새로운 밀레니엄도 이곳에서 맞이해야만 했다.
1999년에 난 군대에 있었다. 암울한 한 해였기에 그해의 마지막 날은 유난히 쓸쓸했다. 20세기를 보내고 21세기를 맞이하던 1999년 12월31일의 밤. 특별히 자정까지 텔레비전 시청이 허락되어 내무실 사람들과 함께 밀레니엄 카운트다운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이러고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2000년을 5분여 앞둔 즈음 난 슬그머니 화장실로 갔다. 어두운 화장실의 차가운 변기에 앉아 21세기를 기다렸다. 잠시 뒤 멀리서 내무실 동료들의 카운트다운 소리가 들렸다. 5, 4, 3, 2, 1. 그리고 이어지는 함성소리. 멀리서 들리던 그 소리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 건, 그 우렁찬 청년들의 목소리가 꽤나 슬프고 쓸쓸하게 들렸기 때문이다. 당시의 그 슬픔과 쓸쓸함의 실체를 정확히 설명하긴 지금도 어렵지만, 몇 가지 파편적인 단서들은 제시할 수 있을 듯하다. ‘1999년’과 ‘군대’와 ‘겨울’과 ‘젊음’과 왠지 모를 답답함들.
<1999, 면회>는 분명 유쾌한 영화지만, 한 꺼풀 벗겨보면 그런 쓸쓸함이 배어 있는 영화이다. ‘상원’과 ‘승준’과 ‘민욱’은 고등학교 동창인 절친한 친구 사이다. 고등학교 졸업 뒤 1년이 지난 1999년의 겨울, 그들은 각기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상원은 대학에 갔고, 승준은 재수생이 되었고, 민욱은 군대에 갔다. 영화는 상원과 승준이 강원도 철원에 있는 민욱의 부대로 면회를 가면서 시작된다. 오랜만에 민욱과의 만남에 들떠 있는 그들이지만, 가만히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노라면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형편이다. 민욱은 외환위기의 여파로 아버지 사업이 실패하면서 어쩔 수 없이 입대하게 됐고, 게다가 상원은 민욱의 여자친구가 준 이별 편지를 전해줘야만 한다. 오랜만에 만난 세 친구들의 만남은 즐겁고 유쾌하지만, 아이와 같은 그들의 풋풋함과 세상에 대한 호기심은 예상치 못한 몇 가지 상황과 만나며 자꾸만 움츠러든다. 그 과정에서 계속 등장하는 것이 ‘상실’의 이미지다. 잃어버린 카메라, 눈밭에 떨어져 있는 이별 편지, 다방 아가씨의 잘린 손가락, 그리고 동정. 영화는 세 친구의 순수함과 그들이 세상에서 겪게 되는 상실감을 충돌시키며, 그들이 앞으로 만나게 될 세상과 현실에 대해 넌지시 보여준다.
<1999, 면회>는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와 서울독립영화제에 공개되어 많은 화제를 모았던 작품이다. 이 영화의 주연을 맡은 심희섭·안재홍·김창환은 두 영화제에서 모두 배우 상을 수상했을 만큼 뛰어난 앙상블을 보여준다. 그들이 연기했던 세 친구, 상원과 승준과 민욱의 모습을 보는 동안 여러 감정이 교차했다. 그들의 싱그러운 표정과 모습들은 깨물어주고 싶을 만큼 귀여웠지만 군대 화장실에서 보냈던 1999년의 마지막 밤이 생각나리만큼 쓸쓸하고 아련한 기분을 들게 만든다.
영화를 본 뒤, 그들의 현재 모습이 궁금해졌다. 이미 30대 중반을 넘겼을 상원과 승준과 민욱. 그리고 민욱의 여자친구와 다방 아가씨들. 그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십수년이 흐른 시간 동안 그들은 얼마나 더 많은 것들을 잃어버리며 살았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 왠지 마음이 저릿해진다.
민용근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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