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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역사는 당신을 100% 책임지지 않는다

등록 2013-03-10 20:00

민용근 영화감독
민용근 영화감독
민용근의 디렉터스컷
<가족의 나라>
한 지붕 아래에서 살아간다는 것. 함께 밥을 먹고 잠을 자며, 서로 사소한 습관까지 공유하는 가족의 모습은 누군가에겐 너무도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상의 풍경이다. <가족의 나라>(7일 개봉)는 오랜 세월 동안 그 소소한 일상을 함께할 수 없었던 어느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이다. 1959년부터 20년간 북한과 일본 정부가 함께 추진했던 ‘귀국사업’으로 북한에 송환되었던 9만4000여명의 재일동포들은 그 후로 북한 땅을 떠날 수 없었다. 영화는 ‘귀국사업’으로 북한으로 보내졌던 아들 ‘성호’가 25년 만에 가족이 사는 일본으로 돌아오면서 시작한다. 뇌종양 치료를 위해 한정된 시간 동안 일본을 방문하게 된 성호와, 자식을 북송선에 태워 보냈던 총련계 간부인 아버지, 아들의 어릴 적 식성까지 꼼꼼히 기억하고 있는 어머니와 오랜 시간 오빠를 그리워해왔던 여동생까지. 이들 가족의 25년 만의 재회는 감격스럽지만 왠지 모를 서걱거림이 느껴진다. 영화는 이 가족의 짧은 만남을 통해 지난 수십년간 이들이 짊어지고 살아왔던, 그리고 앞으로 짊어지고 살아가야 할 마음의 상처를 그리고 있다.

이 영화의 연출자인 양영희 감독의 전작 다큐멘터리 <디어 평양>과 <굿바이 평양>을 통해 한번 접한 적이 있는 소재였지만, 영화를 보며 그때와는 또 다른 울분이 마음속을 떠나지 않았다. 왜 이 가족은 함께 살 수 없는 것일까. 왜 아무도 이 질문에 답을 해주지도, 책임을 지려 하지도 않는 것일까. 영화를 보는 내내 그들이 겪고 있는 잔인한 현실이 고통스럽고 먹먹하게 느껴졌지만, 정작 영화 속의 인물들은 자신의 감정을 눌러 담은 채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다. 유일하게 여동생 ‘리애’만이 오빠와 가족들을 감시하는 북한 감시원(양익준)을 향해 울분을 터뜨린다. “당신도 싫고, 당신의 나라도 싫다!” 이 짧은 외침은 한 인간으로서 솔직하고 간절한 절규였지만, “그 나라에 나도 살고 있고, 오빠도 살고 있습니다. 죽을 때까지 그렇게 사는 겁니다”라는 북한 감시원의 냉혹한 답변에 이내 황망해지고 만다.

이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념과 체제라는 낡은 유령이 현실에 되살아나 나의 삶을 가로막으며 이렇게 말한다. ‘어쩔 수 없다. 죽을 때까지 그렇게 사는 거다.’ 그 말이 주는 깊은 어둠을 체감해 보진 못했지만, 그건 마치 어두운 미로의 끝에서 마주친 거대한 벽과 같은 느낌일 것이다.

역사의 소용돌이에 휩쓸린 채 자기 삶의 일부 혹은 전부가 망가져버린 사람들. 역사는 이 개인들의 삶에 대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이 영화를 통해 보이는 이념과 체제라는 것의 실체는, 결국 개인의 삶을 책임지거나 감당할 능력과 의지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거대한 자신의 틀 속에 개인을 몰아넣고 생의 전부를 요구하는 미숙한 자들의 파렴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가족의 나라>는 결코 특수한 상황에 놓인 타인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도 역사의 임무니, 시대의 요구니 하는 겉치레 말이 난무하고, 누군가는 그 허울 좋은 감언이설에 지금의 현실을 감내하고 희생한다. 국가와 이념이라는 것이 개인의 소소한 일상조차 보장할 수 없다면, 그것은 그 어떠한 것도 강요해서는 안 된다.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건, 가족과 한 지붕 아래에서 함께 밥을 먹을 수 있는 소소한 일상의 소중함이다. 그 작은 일상보다 중요한 이념은 세상에 없다. 아들이 다시 북송되던 날, 북한 감시원을 위해 어머니가 마련한 새 양복 앞에서, 모두가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던 건 바로 그 이유 때문일 것이다.

민용근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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