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장수군에는 1970년대 초반 이후 40년 가까이 극장이 없었다. 2010년 11월 개관한 한누리시네마에서 장수군 어르신들이 입체(3D)영화를 보는 모습이다. 현장에서 튀기는 팝콘을 파는 곳도 장수군에선 이 극장이 유일하다. 왼쪽 작은 사진은 극장 입구. 한누리시네마 제공
“노인들이 영화 보겠나” 반대에도
2010년 군단위 처음 영화관 열어
인구 2배 넘는 5만명 관객 찾아
공공예산 활용 모범사례 평가에도
무상임대 이유로 공무원 견책당해
2010년 군단위 처음 영화관 열어
인구 2배 넘는 5만명 관객 찾아
공공예산 활용 모범사례 평가에도
무상임대 이유로 공무원 견책당해
갓난아기를 안은 30대 초반 부부가 영화 <파파로티>를 보고 극장에서 나왔다. 남편 최영동(31)씨는 16살까지 이 동네에서 자란 뒤 전주·서울에서 지내다 지난해 고향으로 돌아왔다. “귀촌했더니 어르신들이 영화관이 생겼다고 해서 당황했어요. 극장이 있을 거라 상상도 못했거든요. 문화시설 없이 휑했던 곳이었는데….”
또다른 관객 김금애(51)씨가 말했다. “요즘 주변 사람들에게 장수군에 영화관이 생겨 살맛난다고 얘기해요.” 그는 “주말에 극장이 매진될 때면 나도 놀란다”고 했다.
18일 찾아간 전북 장수군 장수읍 두산리의 ‘한누리시네마’는 전국 최초로 군 단위의 지자체가 세운 개봉영화관이다. 1970년대 초반 읍내 극장이 없어진 이 마을에 2010년 11월 다시 극장이 들어선 것이다.
애초 이 극장은 장수군 공공 문화시설인 한누리전당 ‘가람관’ 안에 있는 작은 전시실이었다. 서예·미술동호회 전시를 하곤 했는데, 군민 반응이 썩 좋지 않았다고 한다. 2010년 군민 설문조사에서 “영화관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응답이 58.6%에 이르렀다. 장수군청은 6억7000여만원의 예산을 들여 전시실을 극장으로 다시 꾸민 뒤, 임대료·전기료를 받지 않고 영상관련 업체 ‘글로벌미디어테크’에 극장 운영을 맡겼다. 주민들의 극장요금 부담을 줄이려고 무료 임대한 것이다. 이곳 극장요금은 연령 구분 없이 5000원, 입체(3D)영화는 8000원이다. 극장 개관을 하려 했을 때 “노인분들이 영화를 보러 오겠느냐”는 군의회 반대가 심했다고 한다.
하지만 개관 이후 5만여명의 관객이 극장을 찾았다. 장수군 인구(2만3000여명) 두 배가 넘는다. 94편(한국영화 48편, 외화 46편)을 상영한 지난해엔 3만2353명이 다녀갔고, 1300여만원의 극장 수익도 냈다. 극장 회원으로 등록한 군민들에게 개봉영화 정보를 휴대폰 문자로 보내준다. 무주·진안군에서 원정 관람도 온다.
김혜경 한누리시네마 매니저는 “생전 처음 영화를 보는 어르신, 아이들 관객들도 있다”고 했다. 그는 “왕복 3시간 가까이 걸리는 전주로 가서 4인 가족이 영화를 보면 하루를 다 쓰면서 10만원 이상 지출해야 했는데, 가까운 곳에 극장이 생겨 주민들이 좋아한다”고 말했다. 한 60대 주민은 “읍내에서 모임을 하면 밥 먹고 노래방이나 갈 정도였는데, 식사하고 같이 극장에 갈 때도 많다”며 웃었다.
총 좌석이 90석이지만, 이것마저 1관(36석)·2관(54석)으로 쪼갠 멀티플렉스(복합상영관)이다. 이 시골영화관의 경쟁력이라면 ‘전국 동시개봉’을 하고, 대도시처럼 한 영화가 몇 개의 스크린을 차지하는 중복 상영을 하지 않는 복합상영관이란 점이다.
조금현 장수군청 문화체육관광사업소 계장은 “같은 날 서울과 똑같이 개봉하니 문화 향유에 대한 군민들의 자긍심도 높아졌다. 영화를 골고루 보여주려고 2개관을 운영하게 됐다”고 말했다. 20일까지는 <파파로티> <사이코메트리> <오즈 그레이트 앤드 파워풀> <잭 더 자이언트 킬러>를 상영했고, 21일부터 <지슬> <연애의 온도>가 추가됐다.
겨울방학이 끝나고, 벼농사로 바빠지기 시작한 3월 평일엔 하루 평균 20명, 주말 150명 관객이 오지만, 이 극장이 지키는 원칙이 있다. 관객이 뜸한 오전에 극장에서 공공행사를 하자는 제의가 와도 거절한다. 극장 관계자는 “관객이 없어도, 1명이 와도 영화를 틀어야 한다. 어느 시간에 가도 영화를 볼 수 있다는 신뢰를 줘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제 ‘한누리시네마’는 공공예산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전국적인 모범사례가 되고 있다. 공공시설을 극장으로 개조하면 극장이 없던 곳의 문화 갈증을 해소하는 가능성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지역별 극장이 늘어나면, 상영관을 제대로 잡지 못하는 저예산 독립영화인들의 숨통을 틔워줄 수도 있다. 장수군청은 새달 3일 경기도 성남에서 극장이 없는 기초단체를 상대로 한누리시네마 운영에 대한 설명회도 연다. 조 계장은 “토목공사를 조금만 줄여도 군민들이 공통으로 누리는 문화복지를 높여줄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장수군청의 전임 문화체육관광사업소장과 계장은 지난해 정부 종합감사에서 견책 징계를 받았다. 민간업체에 ‘극장 무상임대’를 준 것이 ‘국공유재산관리법’에 위반됐다는 이유에서다. 조 계장은 “임대료를 받으면 민간업체가 촌에서 극장을 운영하지 않으려 하고, 극장요금도 올라간다. 인구 3만·5만명 이하 지역에선 공공시설 무상임대를 할 수도 있다는 조항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했다. 현재로선 장수군 공무원들이 징계를 각오하며 이 작은 시골영화관을 지켜야 하는 셈이다.
장수/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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