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시내에서 무궁화예식장을 운영하는 토박이 김원진씨.
[100℃르포] 고생이 고생이 아니더라구요 “첫날엔, 어색해요”
유명한 배우와 감독 등 영화제를 찾아오는 게스트들이 국제영화제의 꽃이라면 축제를 생기있게 만드는 푸른 잎들은 자원봉사자들이다. 지난 10일부터 14일까지 충북의 소도시 제천과 청풍호반에서 열린 ‘2005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도 170명이 넘는 자원봉사자들이 영화제의 활기를 돋웠다. 젊은 자원봉사자들로 북적이는 부산영화제와 달리 나이 지긋한 중년 자원봉사자들의 푸근한 웃음은 이 영화제에서 볼 수 있는 큰 매력인 듯했다. 자원봉사 활동을 관리한 김대훈 팀장은 “여느 영화제에 비해 40~50대 자원봉사자들이 많은데다 지역주민들의 참여도가 높아 안정된 분위기에서 치를 수 있었다”고 자평했다. 축제에서 만난 4팀의 ‘초짜’ 자원봉사자들에게 참가사연과 소감을 들었다. 예식장 사장님, 운짱 되다 군대 시절을 제외하곤 제천 땅을 떠나본 적이 없다는 토박이 김원진(50)씨는 제천시내 무궁화예식장을 경영하는 사장님이다. “면접 때 이쪽 지리를 훤히 아니까 관광안내라도 했으면 좋겠다고 했지만 나이가 많아서 안될 줄 알았어요.” 함께 지원했다가 떨어진 예식장 사진기사의 “로비 한 것 아니냐”는 부러움을 받으며 자원활동팀에 입성한 그는 예식장 승합차까지 가져와 시내와 청풍호 행사장을 오가며 게스트 수송을 담당했다. ‘운짱’을 하지 않는 시간에는 청풍호 옆 레이크 호텔의 안내석에 앉아 일반 관광객들에게 영화제를 소개하고 영화제 방문객들에게는 근처 볼거리와 길 안내를 했다. “광복절도 다가오는데 왜 일본영화를 상영하냐는 관광객들의 핀잔을 받을 때는 좀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젊은 친구들과 함께 일을 하니 나도 젊어지는 것같아 좋습니다.” 자원활동에 바빠서 정작 좋아하는 영화는 한편도 보지 못했다는 게 가장 큰 아쉬움이었다고 한다. 내년에는 제대하는 아들만 좋다고 한다면 아들과 함께 자원활동에 참여할 계획을 일찌감치 세웠다. 청풍호는 독수리7형제가 지킨다
대학 신입생인 제천고 동문 친구들이 뭉쳐 ‘독수리7형제’라는 별명이 붙은 장비지원팀 자원봉사자들.
야외상영과 공연을 하는 청풍호반에는 7명의 청년들이 우르르 몰려다닌다. 처음 만난 스태프들에게도 “너네 독수리지?” 인사를 받는 이들은 장비지원팀. 내리쬐는 땡볕 아래서 무대설치와 천석이 넘는 의자정리, 천막 설치 등 육체적으로 가장 고된 ‘노가다’를 책임진다. “무전기랑 이어폰 꼽고 유명배우들 보디가드하는 일인 줄 알았어요.” 무거워서 아무도 받지 않으려는 무전기를 냉큼 받아 대장이 된 이종호(19)군과 나머지 6명은 제천고 동문으로 한 살 어린 장완규(17)군을 빼고는 모두 타지에서 대학을 다니다가 방학 때라 집에 돌아온 동갑내기들이다. 고3수험생인 장군은 부모님과 선생님의 특별허락을 받고 영화제에 참여했다. “연극영화과에 들어가서 연출을 전공할 계획이라 좋은 체험이 될 것같아 자원활동에 지원하게 됐어요.” 장군은 매일 낮2시부터 새벽2시까지 중노동을 하고 돌아간 뒤에도 다음날 아침에는 어김없이 학교 보충수업에 나간다. “아침에는 눈뜨기가 너무 힘들어 오늘은 나가지 말까하는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콘서트 때 사람들이 열광하는 걸 보면 내가 열심히 일해서 그런 것같아 뿌듯해요.”
엄마, 아빠는 극장지기, 딸은 초청팀
엄마, 아빠, 큰 딸이 모두 자원봉사자로 나선 신현갑, 고연근 부부와 딸 신지수씨.
휴가를 내 서울에서 의료자원봉사를 온 의사 백수정씨.
서울 이대목동병원에서 내과 레지던트 4년차로 일하고 있는 백수정(29)씨는 전문의 시험준비에 한창 바쁜 친구들에게 “미쳤다”는 소리를 들으며 이 곳에 내려왔다. “실은 제가 너무 좋아하는 밴드 커먼 그라운드가 공연한다는 소식에 달려 왔어요. 기왕 오는 김에 뭔가 할 일이 있으면 좋을 것같아 영화제팀에 연락을 해서 의료자원활동을 하게 됐죠.” 자원활동팀 모집 기간이 끝난 뒤에 합류하게 된 터라 숙박 지원이 안됐지만 백씨는 자비를 들여 찜질방에서 이틀, 호텔에서 하루 묶으며 3일 반 동안 의료자원활동을 했다. “휴가철 행사라 탈이 나거나 사고가 나기도 쉬운데 다행히 벌레 물리거나 넘어져 찰과상 입은 분들만 찾아왔어요. 간단한 응급처치를 하고 남는 시간엔 의자 정리같은 걸 돕는데 제가 하는 일은 다른 자원활동팀에 비하면 고생도 아녜요.” 영화제 자원봉사는 즉흥적 결정이었지만 백씨는 2년 전부터 매달 한번씩 탈북자 의료지원봉사에 참여해온 1급 자원봉사자다. 그래도 이번 축제에서 역시 가장 좋았던 건 코 앞에서 커먼 그라운드의 리허설 공연까지 챙겨보고 이들과 함께 사진도 찍었던 일이라고.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사진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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