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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읽지 않는 시대와 작별하는 ‘무비위크’

등록 2013-03-24 20:04

민용근 영화감독
민용근 영화감독
민용근의 디렉터스컷
영화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한 건 고등학교 2학년 시절부터였던 것 같다. 1993년, 라디오 프로그램 ‘정은임의 영화음악실’과 <영화에 대하여 알고 싶은 두세 가지 것들>이라는 책을 통해 새로운 영화의 세계를 접하게 된 나는 영화와 관련된 것이라면 무엇이든 찾아보곤 했다. 당시 그 목마름을 해결해주던 영화잡지가 타블로이드판으로 발행되던 <영화저널>이었다. 라디오와 책과 잡지라는 세 가지 매체는 내게 있어 영화로 향하는 소중한 통로였다. 극장도 자주 못 갔고 집에 비디오 데크도 없었기에 막상 그곳들을 통해 소개되는 영화들의 대부분은 볼 수 없었지만, 듣고 읽은 것을 토대로 그 영화들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해했다.

당시 유행처럼 쓰이던 말이 ‘영화 읽기’였다. 단순히 영화를 ‘본다’는 차원을 넘어서 영화 속에 숨겨진 의미를 찾아내고, 인간의 본질과 현실의 문제 등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를 찾아내고자 하는 영화를 대하는 일종의 ‘태도’였다. 예술영화가 대중에게 소개되고, 영화라는 매체가 우리나라에 새로운 문화로 자리잡던 그 시기는 무언가 새로운 것이 탄생할 때의 설레는 감흥이 꿈틀대던 때였다. 저변이 넓다고는 보기 어려웠지만, 그 열기만큼은 뜨겁고 진지했다.

20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우리나라에서의 영화는 많은 발전을 이루어왔다. 당시와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더 많고 다양한 영화들이 소개되고 있고, 더 많은 정보들로 넘쳐나고 있으며, 한국영화 또한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어왔다. 저변이 넓어진 것은 분명하지만, 가끔 허탈해지는 기분이 들거나 그때의 분위기가 새삼 그리워질 때가 있다. 영화를 둘러싼 다양한 창구들이 하나둘씩 없어지거나, 관객들의 취향이 획일화되어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더욱 그렇다.

비단 영화의 문제는 아니겠지만, 이제 사람들은 더이상 시간을 들여서 무언가를 ‘읽어내려고’ 하지 않는다. 영화 역시 감각적으로 받아들이고 너무 쉽게 배출해버린다.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 영화는 가장 간편한 시간 때우기용 오락거리이자, 웃음과 울음으로 패키지된 감정을 소비해버리는 분출구 정도로만 여겨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극장 안에서는 울고 웃지만, 그 감정과 사고가 극장 밖 현실로까지 이어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사는 것도 힘들고 빠듯한데 영화를 보면서까지 골치 아프게 머리 싸매고 싶지 않다는 지인의 말은 공감이 가면서도 서글퍼지는 말이다.

오늘 지하철에서 <무비위크> 571호를 샀다. 12년간 발행되던 영화 주간지의 마지막 호였다. 그간 사라져갔던 많은 영화전문지들처럼 무비위크도 비슷한 전철을 밟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무언가 안타까운 마음이 쉽게 가시지 않는다. 누군가에겐 영화잡지 하나 사라지는 것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누군가에겐 영화를 통해 생겨나던 생각의 연결고리들을 이어주던 소중한 끈이 끊어져버린 것이고, 한편의 영화를 둘러싼 다양하고 깊이 있는 견해와 정보들을 접할 수 있는 창구가 사라진 것이다. 영화에 대한 담론들이 풍성해지면, 자연스런 상호작용에 의해 영화도 함께 풍성해지기 마련이다. 영화는 대중문화로서, 예술로서 다양한 정체성을 지녀야 하지만, 지금 우리의 영화는 관객 수와 매출액으로 대표되는 외적 성장의 환호성에 가려져 점점 더 획일화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을 막아내기 위한 역할이 영화 저널과 비평의 몫이다. 포털사이트의 온라인 별점이 영화에 대한 유일한 담론이 되어버릴 미래가 당장의 현실이 되진 않겠지만, 오늘의 우리는 하나의 영화저널을 잃어버림으로써 그 어두운 미래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건 아닐까 라는 서글픈 생각이 든다.

민용근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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