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호진 기자
울림과 스밈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2년여 가까이 영화 담당 기자로 지내며 때때로 부담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시사회가 끝나자마자, 영화를 분석하는 일반 관객들의 평이 온라인에 쏟아지는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전문가 수준의 관객들의 층이 두터워지고 1000만 관객 한국영화가 잇따라 등장하는 데 비해, 영화계 내부의 문제는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지금 상태라면 한국 영화계는 복합상영관 한곳에서 한편의 영화가 몇개의 스크린을 차지하는 ‘스크린 과점현상’과 대기업 투자·배급망을 타지 못한 영화들이 개봉 초반부터 관객이 한적한 오전·심야시간대로 밀리는 상황이 계속될 겁니다.
저예산·독립영화들이 작품의 완성도를 갖췄다 해도 전국 20개관도 되지 않는 곳에서 관객과 만나고, 스태프 3명 중 2명은 영화작업만 해서는 법정최저임금(월 95만7220원)도 벌지 못하고 생계불안으로 몰리며 한숨짓는 소리도 변함없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영화계 양극화가 깊어지고, 영화 다양성이 가로막힌 답답함이 여전하기 때문입니다.
3월 초 퇴임한 최광식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하나라도 개선시켰다면 좋았겠지만, “공정한 영화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이 과제”라던 그도 사실상 이 문제들을 어찌하지 못한 채 학계로 돌아갔습니다.
새로 부임한 유진룡 문화부 장관은 어떨까요? 스크린 독과점 현상을 일정 정도 해소하고, 공공예산을 지원해 저예산·독립영화들의 상영 공간을 확대할 의지를 보여줄까요? 영화계가 초과근무(야간·휴일)수당 지급 등을 의무화한 표준근로계약서대로 스태프와 고용계약을 맺을 수 있는 환경 조성에 관심을 가질까요? 박근혜 대통령도 대선 과정에서 영화 스태프들의 열악한 처우 등을 개선하겠다는 공약을 내건 마당입니다.
제작기획·투자뿐 아니라, 복합상영관 씨지브이(CGV)를 기반으로 우월적인 극장 배급망을 가진 씨제이(CJ)가 건강한 영화계를 만들기 위한 노력에 적극 동참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대기업이 영화산업 규모를 키웠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있지만, 투자자본이 제작자의 창작권과 감독의 연출·편집권을 침해하고, 스크린 독과점을 방조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씨제이가 독립·예술영화들의 주요한 상영 공간인 ‘무비꼴라쥬’의 상영관 수를 전국 9개관에서 더 늘리는 안을 검토중이라는 얘기는 그래도 반가운 소식입니다.
6억~7억원대까지 출연료가 솟은 영화계 톱스타들이 영화계의 산적한 문제를 같이 고민하고, 발언하는 분위기도 퍼졌으면 합니다. 꼭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라는 게 아닙니다. 배우 안성기씨가 독립영화 <지슬>의 제주 개봉 때 제주를 찾아가 상영을 축하해주고, 배우 강수연씨가 <지슬>을 상영하는 극장의 한 회차 상영 좌석을 구입해 관객들에게 나눠주며 작은 영화의 관심을 촉발시켰던 것들이 좋은 선례가 될 겁니다.
많은 언론과 영화계가 줄곧 제기해온 ‘해묵은 문제’들이 하나둘 풀려나가길 바랍니다. 이제 영화 담당 기자에서 영화 관객으로 돌아가지만, 영화계 양극화의 간극이 조금씩 좁혀지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들려오길 기대합니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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