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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위험한 사랑? 지루한 안정?
묻는다, 바른 삶이 있는가

등록 2013-03-24 20:08

영화 <안나 카레니나>의 한 장면. 안나 카레니나와 브론스키의 행복한 한때는 뽀얗고 화사한 화면 속에서 그 달콤함이 더 부각된다.   유피아이(UPI)코리아 제공
영화 <안나 카레니나>의 한 장면. 안나 카레니나와 브론스키의 행복한 한때는 뽀얗고 화사한 화면 속에서 그 달콤함이 더 부각된다. 유피아이(UPI)코리아 제공
톨스토이 원작 영화 ‘안나 카레니나’
주연 나이틀리 격정적 사랑 연기
조명밝기 통한 연극 기법 인상적
화려한 의상과 장식적 화면 눈길

어떤 사랑에 우리는 불륜이란 이름을 붙인다. 그리고 그 무책임함과 비도덕성을 질타한다. 하지만 당사자에게 그 사랑은 위험한 열정에 뛰어들 것인지 지루한 안정에 머무를 것인지 결단을 요구하는 인생의 중대한 선택일 것이다. 톨스토이 소설을 원작으로 영화화해 최근 개봉한 <안나 카레니나>는 바로 그런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사실 19세기에 나온 2000쪽에 육박하는 원작 소설을 제대로 읽은 이는 그리 많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고전영화 팬들이라면 비비안 리가 기차 앞에 서 있던 마지막 장면이 한 장의 스틸처럼 기억에 선명할 것이다. <안나…>는 비비안 리 주연(1948) 외에도 그레타 가르보(1935), 소피 마르소(1997) 등 100년의 세월을 걸쳐 끊임없이 영화화되어왔다.

영화계에서도 ‘고전’이 되어버린 이 작품을, 감독 조 라이트는 조명의 밝기와 장막의 여닫음으로 장면을 구분하는 연극적 기법을 이용해 독창적으로 풀어냈다. 원작의 깊이를 충분히 옮기지 못했다는 비판도 나오지만, 이 새로운 기법은 시각적인 면에서 일단 눈을 끈다. 올해 아카데미상 의상상을 받은 화려한 의상을 비롯해 장식적인 화면 자체가 줄거리 못잖은 볼거리다. 연극에서 무대가 막을 내리며 바뀌듯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극적으로 변해버리게 되는 인생의 모습을 영상으로 표현하고 있다.

원작자 톨스토이는 “한 여자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라고 간단히 요약했지만, 사실 <안나…>는 19세기 제정 러시아의 숨막히는 귀족 사회에서 살아가는 한 여자의 결코 간단치 않은 사랑과 주변 군상을 통해 ‘무엇이 바르게 사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사는 안나 카레니나(키라 나이틀리)는 유력한 정치가지만 고지식한 남편 알렉세이 카레닌(주드 로)과 권태로운 결혼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친오빠의 외도로 상심한 올케를 달래기 위해 모스크바에 간 안나는 거기서 젊고 매력적인 장교 브론스키(에런 존슨)를 우연히 만나 설렘을 느낀다. 이 사랑에 뛰어들지 말지 갈등은 잠시, 안나는 이내 격정적인 사랑에 빠진다. 두 사람은 주변의 수군거림과 손가락질에 지쳐 모든 것을 버리고 도피를 택하고 말지만, 이는 꿈꾸던 행복은 아니었다.

조 라이트 감독은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이언 매큐언의 <어톤먼트> 등 유명 소설을 우아하면서도 완성도 높은 영화로 만들며 시대극에 탁월한 재능을 보여왔다. 이전 두 작품에서 조 라이트의 뮤즈였던 키라 나이틀리가 이번에도 안나 카레니나를 맡았다. 그리고 조 라이트는 조금 더 욕심을 냈고, 그 욕심을 연극적 기법으로 구현했다. 영화는 극장에 세트를 만들어 아이스링크, 무도회장, 오페라 극장, 경마장 등을 꾸며 놓고 각 세트를 연결하는 문을 만들어 놨다. 아이스링크장을 지나 문을 열면 무도회장이 열리는 식의 독특한 화면 전환이 이어진다.

깡마르고 예민해 보이는 인상처럼, 키라 나이틀리는 안나 카레니나를 신경질적이고 철저히 이기적인 인물로 해석했다. 23살 젊은 배우 에런 존슨은 설익은 열망에 몸을 내던진 젊은이의 풋풋함을 잘 보여준다. 영화를 주도하는 건 안나와 브론스키이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마음을 움직이는 건 주드 로가 그려내는 알렉세이 카레닌이다. 원래의 이미지대로라면 브론스키를 연기했을 법한 주드 로가 줄어가는 머리숱을 공개하면서까지 카레닌의 고루한 면모를 보여준다. 재미없는 기계 같았던 알렉세이가 자기도 몰랐던 분노와 집착 같은 감정을 뒤늦게 깨닫고 또 이내 그 감정을 삭이려 애쓰는 모습이 설득력 있게 묘사돼 관객들의 마음을 빨아들인다.

‘복수는 내가 하리라, 내 이를 보복하리’라는 영화의 헤드 카피는, 결국 열정을 감내하고 마음에 품은 채 살아가는 카레닌이 이 이야기의 진짜 주인공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박보미 기자 bom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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