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죽어야 한다-‘이대로, 죽을순 없다’
“이대로, 죽을 순 없다!”
뇌종양 판정과 함께 시한부 선고를 받은 강력반 이대로(이범수) 형사는 분명히 속으로 이렇게 외쳤을 거다. 하기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8살 난 딸을 둔 홀아비가 어찌 마음 편히 갈 수 있겠는가. 고심 끝에 그는 ‘이대로’가 아니라 ‘다른 대로’ 죽기로 마음 먹는다. 10억원의 보험금을 딸 앞으로 남기려면 뇌종양으로 죽기 전에 경찰로서 명예롭게 순직해야 하는 것이다. 이제 이대로의 ‘사생결단 순직 프로젝트’가 펼쳐진다.
사실 강력반 10년차의 닳고 닳은 이대로는 불량형사 중에 불량형사. 범인 검거 현장에서 지원을 요청하는 선배 형사의 연락을 받은 뒤 사이렌을 울리며 쏜살같이 달려간 곳은 현장이 아니라 애인이 기다리고 있는 모텔이다. 한참 자동차 추격전을 벌이다 빨간 신호에 걸리면 차를 세우고 느긋하게 기다리며 은근슬쩍 범인을 놔주는 희한한 짓 뒤에는 당연히 돈뭉치가 오간다. 이런 이대로가 이젠 강력범죄 현장 한가운데로 돌진하는 ‘불나방’ 형사로 변한 것이다.
‘생즉사 사즉생’이라고 했던가? 죽기를 각오한 이대로의 작전은 이상하게 꼬여만 간다. 날아오는 칼을 맞는가 싶더니 칼끝이 아니라 손잡이 뒷부분이고, 옥상에서 뛰어내리면 밑에 범인이 깔려 있다. 일부러 자동차 브레이크를 고장낸 뒤 범인의 차를 향해 막무가내로 돌진해도 결과는 엉뚱하게 나온다. 이대로의 ‘사적인’ 작전이 실패를 거듭할수록 경찰의 ‘공적인’ 작전은 성공을 거듭하고, 이대로는 초우량형사로 추앙받는다.
<이대로, 죽을 순 없다>가 이처럼 아이러니한 상황을 유머로 풀어나가는 방식은 자연스러운 편이다. 이대로 역에 다른 배우를 떠올리기 힘들 정도로 능청스러운 연기를 보여준 이범수와 동료 형사로 나온 손현주, 최성국 트리오는 각자 역할을 분담해 치고 나갈 때와 절제할 때의 수위를 적당히 조절한다. 옛 애인 영숙(강성연)의 등장과 함께 가족드라마로 흐르는 후반부에서도 눈물을 억지로 짜내려는 무리수를 두지 않고 담백하게 마무리를 한다.
<하면 된다> <텔미썸씽> <접속> 등의 조연출을 맡은 이영은 감독의 데뷔작으로, 부인 오지혜와 장인 오현경, 장모 윤소정 등 가족들이 우정출연, 아니 ‘애정출연’을 한 장면을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18일 개봉.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사진 젊은기획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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