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용근 영화감독
민용근의 디렉터스컷
<모래가 흐르는 강>, <춤추는 숲>
<모래가 흐르는 강>, <춤추는 숲>
최근 두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우리의 강과 산을 그린 두 편의 영화에선 모두 절박함과 간절함이 느껴졌다. 아름다운 물소리, 햇볕에 반사된 강의 반짝임, 작은 산의 나무 사이로 부는 바람 소리, 흙의 촉감, 아이들의 웃음소리. 그리고 그 안에 존재하는 수많은 생명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사라져 가는 그 작은 존재들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에 보는 내내 마음이 아팠다.
<모래가 흐르는 강>(3월28일 개봉)은 4대강 공사로 파괴되어 가는 낙동강의 지천인 내성천의 모습을 담아낸 다큐멘터리다. 2005년 천성산을 지키기 위해 케이티엑스(KTX) 터널 건설에 반대하며 목숨을 건 단식투쟁을 벌인 바 있던 지율 스님은 4대강 착공식 뉴스를 본 뒤 산에서 내려와, 점점 병들고 파괴되는 내성천의 모습을 4년에 걸쳐 카메라에 담아냈다. 영상들은 느리고, 차분하며, 꼼꼼하다. 맑은 소리를 내며 천천히 흐르는 지천의 모습과 무척이나 닮아 있는 그 리듬에 몸을 맡기면, 이상하게도 카메라를 들고 있는 이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자연에 대한 한없는 애정과, 그 존재들이 파괴되어가는 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무력감과 절망감. 강이 파헤쳐지고 나무가 베어지는 모습은, 흡사 인간의 배를 갈라 내장을 파헤치고 팔과 다리를 싹둑 잘라버리는 것처럼 잔혹하게 느껴진다. 지율 스님의 카메라는 인간과 강과 나무와 벌레 모두 하나의 생명으로서 평등하다는 것을 깨닫게 만드는 시적인 힘을 갖고 있다.
그리고, 얼마 전 막을 내린 인디다큐 페스티발에서 본, <춤추는 숲>(5월23일 개봉 예정). 서울 마포 유일의 자연생태 산을 깎아 학교를 지으려는 어느 사학재단에 맞서 성미산을 지키려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과 일상을 그린 작품이다.
재단 쪽의 공사 강행으로 성미산의 나무들이 잘려나간 어느 날, 황량한 산에서 한 아이가 쪼그려 앉아 잘린 나무를 다시 심고 있다. 법적 소유권을 내세워 나무를 베고 산을 허무는 어른들의 행동에 대해 묻자, 아이는 이렇게 답한다. “생명에는 주인이 없어요.” 우리가 살고 있는 잔혹한 세상에 대해 이보다 더 정확하게 진단해줄 말이 있을까.
이 영화들을 통해 우리의 강과 산이 말을 걸어오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목소리는 물욕과 권력욕에 사로잡힌 인간들에 의해 목숨을 잃어가는 강과 산의 절규다. 인간은 결코 우월한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수많은 생명들과 함께 더불어 살다 사라질, 그들보다 더 잘나지도 더 못나지도 않은 평등한 존재일 뿐이다.
사실 이 영화들을 보러 오게 될 대부분의 관객들은 이미 문제의 심각성에 공감하는 이들일 것이다. 개발 이익에 혈안이 된 높으신 분들, 정작 이 영화를 보아야 하지만 자발적으로 보러 올 것 같지 않은 분들에게 이 영화를 권하고 싶다. ‘모래가 흐르는 강’의 아름다운 물소리와 ‘춤추는 숲’ 사이로 지나가는 바람 소리, 그 속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그들도 무언가 느끼지 않을까. 바쁘신 줄은 알지만 꼭 보러 오시라 부탁드린다. 혹시나 바쁜 관계로 보러 오지 못하신다면, 적어도 <모래가 흐르는 강>에 나오는 이 한 문장만이라도 기억해주시길.
“지금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시급한 일은 강에 가하는 폭력을 멈추고, 강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아이들에게 자연의 놀이터를 돌려주는 일이며, 강이 우리가 입힌 상처를 치유할 수 있도록 기다려 주는 일이다.”
민용근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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