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진의 시네마즉설
<로마 위드 러브>
<로마 위드 러브>
지난번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도 그랬지만 최근 우디 앨런 영화는 시간을 섞어 버리는 데 천재적이다. 앨런의 신작 <로마 위드 러브>는 로마 관광 홍보영화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노골적으로 유명 관광지에 카메라를 세우고 네개의 에피소드를 나열하는데, 관광 엽서 같은 풍경이 나오는데도 촌스럽지 않고 얄밉지 않으며 심지어 로마에 가고 싶은 마음이 든다. 거기서 펼쳐지는 에피소드가 너무 사랑스럽기 때문이다. 이 네개의 에피소드는 모두 일장춘몽에 가까운 판타지 코미디인데 재미있는 것은 서로 시간 순서대가 일치하지 않는다. 어떤 것은 몇 달에 걸쳐 일어난 일이고 어떤 것은 하루도 안 걸리는 얘기 같다. 그런데도 우디 앨런은 상관하지 않는다. 어차피 일장춘몽이니까. 그게 로마라면 가능한 판타지이니까.
오래전 베네치아 영화제에 출장을 갔다가 영화제가 열리는 리도섬행 배가 아닌 다른 배를 타서 반나절 길을 잃은 적이 있다. 에라 모르겠다 심정으로 정처 없이 걸어다녔다. 그때는 총각이었으니 뭔가 사건이 일어나길 기대했을 법도 하다. 물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머릿속에서는 <베니스에서의 죽음>, <돈 룩 나우> 등 걸작뿐만 아니라 틴토 브라스의 에로 영화 <열쇠>의 장면들까지 떠올랐지만 화장을 짙게 한 여인 같은 베네치아의 풍경은 시간이 흐를수록 못생겨졌다. 그로부터 며칠 뒤 모델 뺨치는 미모가 돋보였던 한 이탈리아 여성과 술자리에서 꽤 오랜 시간 대화 비슷한 걸 나눴는데 그 술집에서 서빙 아르바이트를 하던 대학생 청년이 하도 질투를 하는 바람에 어색하게 헤어졌다. 그녀는 내 숙소 근처까지 따라와 뺨에 입을 맞추며 작별인사를 해주었다. 나는 뭔가 아쉬웠지만 그것으로도 좋았다. 상상했던 게 현실이 됐으면 골치 아픈 후일담이 생겼을 것이다.
왜 이런 얘기를 구구절절 하느냐면 <로마 위드 러브>의 내용이 그렇기 때문이다. 벼락출세와 꿈같은 로맨스와 불륜 등이 아름답고 절묘한 음악과 함께 싱그럽게 펼쳐지지만 이 영화의 모든 에피소드는 판타지다. 등장인물들은 그것에 대해 아쉬워하지 않는다. 판타지도 좋지만 현재도 좋다는 것이다. 도덕적이고 관습적인 결말이지만 과정이 중요하다. 우리가 머릿속에서 꿈꾸는 일탈과 몽상의 요건들이 이 영화에선 아름다운 로마의 배경을 축으로 완벽하게 갖춰져 있다. 그 몽상을 몽상으로 즐기는 것도 정신건강에 나쁘지 않다. 우디 앨런은 나이를 먹을수록 신경증과 노이로제에 시달리는 도시 지식인의 고뇌를 거리 두고 코미디로 풀었던 과거 전성기의 영화와는 비교되지 않는 여유를 보여준다. 혹자는 최근의 우디 앨런 영화가 찰기가 빠졌다고 하지만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의 영화는 여전히 팽팽한 피부를 유지하는 중이고 논리적 인과를 훨씬 유연하게 벗어날 뿐이다. 좀 말이 안 되면 어떤가. 어차피 판타지이고 영화인데. 그의 최근작은 그렇게 말하는 것 같다. 인생에서도 마찬가지다. 좀 이상한 생각을 하면 어떤가. 어차피 상상만 했을 뿐인데. 하도 세상살이가 각박하고 정이 없으니 이 어르신의 영화적 여유가 마냥 정겹게만 느껴진다.
영화평론가·명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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