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용근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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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스트 앤 본>
<러스트 앤 본>
만약 다시 태어나게 된다면 무슨 일을 하고 싶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때에 따라 조금씩 바뀌긴 하지만, 나의 경우는 격투기 선수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시합이 시작되기 전 맞은편 상대를 응시하는 극도의 긴장된 순간, 공이 울린 후 피땀으로 단련된 자신의 육체를 불태우듯 소진하는 폭발의 순간, 경기가 끝난 뒤 죽일 듯이 싸우던 상대와 나누는 본능적이고 진심 어린 포옹의 순간들 모두 내게는 동경의 대상이다. (아마도) 현생에는 이루지 못할, 그 바람의 중심에는 ‘육체성’에 대한 동경이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두뇌와 신경, 근육과 감각들이 육체를 통해 집대성되어 폭발할 때의 짜릿함과 그 순간을 통해 전해져오는 ‘살아있다’는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자각이 바로 그것이다.
자크 오디아르 감독의 여섯 번째 작품인 <러스트 앤 본>(5월2일 개봉)을 본 뒤, 육체성에 대한 자각이 더 뚜렷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주인공 알리는 평생을 동물적인 본능만으로 살아온 그저 그런 격투기 선수다. 오로지 살기 위해 살아오던 그는, 범고래 조련사인 스테파니와 우연한 만남을 갖게 된다. 너무도 다른 삶을 살아왔기에 다시 볼 일이 없을 것 같던 둘의 인연은 예기치 못한 일을 통해 다시 이어지게 된다. 범고래 쇼 도중 스테파니의 두 다리가 사고로 인해 절단되고, 그 후 절망스런 나날을 보내던 스테파니가 알리에게 연락을 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해서 만나게 된 두 사람의 상처와 회복의 과정이 영화를 통해 그려진다.
자크 오디아르의 영화에는 언제나 전혀 다른 두 세계의 만남이 존재해 왔다. <내 입술을 읽어봐>에서는 소심한 사무직 여성과 전과를 가진 범죄자의 만남이, <내 심장이 건너뛴 박동>에서는 한 남자 안에 동시에 존재하는 폭력과 예술에 대한 본능이, <예언자>에서는 교도소 내의 코르시카와 아랍계 수감자의 대립이 존재한다. 자크 오디아르는 전혀 섞일 것 같지 않은 이질적인 두 세계를 하나의 공간 안에 몰아넣은 뒤, 그들이 어떻게 충돌하고 수렴되는지를 절묘하게 그려낸다.
<러스트 앤 본>의 두 주인공 알리와 스테파니 역시 그렇다. 둘은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이들이지만, 결국 ‘육체’라는 매개를 통해 다시 이어진다. 자신의 다리가 절단된 뒤 다시 알리에게 연락을 하게 된 스테파니는, 알리를 통해 자신의 ‘절단된 육체’를 자각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다. 사고 이후 봉인해 놓았던 자신의 육체를 바닷물 위에 띄우고, 절반이 사라진 자신의 다리에 문신을 하고, 그 모습 그대로 알리와 사랑을 나눈다. 그녀가 알리를 통해 자신의 육체를 자각하게 됐다면, 알리는 스테파니를 통해 잃어버린 자신의 영혼과 감정에 눈을 뜨게 된다. 절대 무너질 것 같지 않던 단단한 육체의 알리가 마지막에 터뜨리는 울음은, 그 어떤 사랑 고백보다 애절하고 진실하다. <러스트 앤 본>에는 뼈가 부서질 듯한 고통과 섬세하고 예민한 떨림, 거창하게 치장하지 않는 위로가 공존한다. 이 담담한 러브스토리가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고 흔든다면, 그건 육체에 대한 예민한 자각이 우리의 영혼을 끊임없이 건드려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칼럼의 마지막을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감독인 자크 오디아르의 영화로 맺게 되어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미숙한 생각과 부족한 글에 통감하며 보낸 일 년 반의 시간이었지만, 즐거웠고 행복했다. 함께 마음과 생각을 나누게 될 다음 지면은 극장의 스크린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곳에서 다시 만나요, 부디. <끝>
민용근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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