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상효 영화감독
[육상효의 이야기 세상]
초보 시나리오 작가들에게
초보 시나리오 작가들에게
이야기는 현실을 모사한다. 현실의 시간은 앞으로만 간다. 그런데 최근 집중적으로 읽은 젊은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들의 이야기 속에서 시간들은 자꾸 거꾸로 갔다. 회상 장면이 없는 시나리오는 없었다. 영화적이라 생각한 것일까? 그 착각 속에서 이야기의 기본 속성들은 사라져 갔다. 모든 회상은 결국 불필요한 설명이다. 회상으로서 자연스런 시간의 흐름을 단절시키기 전에, 우리의 경험을 다듬어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이야기 창작의 가장 기본적인 속성들을 익혀야 했다. 영화적이라는 착각이 만들어낸 소모적 테크닉들은 더 있었다. 일인칭 보이스 오버가 끊임없이 장면들을 설명했다. 삶에서 어떻게 눈앞의 현실을 그렇게 설명해주는, 전지적 신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카메라의 움직임을 상세히 적시한 시나리오도 많았다. 캘리포니아예술대학에서 30년 넘게 감독 지망생들을 가르친 알렉산더 매켄드릭이 말했다. 이야기의 길을 잃은 초보 시나리오 작가들이 도망가는 곳이 영화적 테크닉이라고. 시나리오 속에 배경음악의 제목과 가수까지 명기한 것도 앞의 격언이 유용함을 증명한다. 거의 모든 대사마다 인물 이름 뒤에 괄호를 치고 대사 지문을 넣어 놓은 작가에게는 차라리 지금 당장 연출을 하라고 얘기하고 싶다. 간명한 대사들만으로도 인물들의 표정과 말투를 느끼게 하려는 노력은 없었다.
무엇보다 이야기를 너무 장르적으로만 접근했다. 상당히 많은 시나리오들이 형사, 스릴러, 액션 이야기였다. 초자연적인 현상들이 사랑을 도와주는 판타지 로맨스도 있었고, 우리의 모든 역사 속에는 우리가 모르는 음모들이 있었다는 가정에서 출발한 음모론 사극들도 있었다. 많은 이야기들이 최근 시장에서 성공한 장르들로부터 출발하고 있었다. 작가의 내면으로부터 출발해서, 자신이 잘 아는 일상을 직조해서 관객에게 다가가려는 이야기들은 드물었다. 장르의 명령으로 강압된 이야기들은 잘못 쓴 미스터리 스릴러의 인물들처럼 유혈은 낭자하지만 목적을 잃고 끝내 시체로 뒹굴었다. 장르는 작가에게서 출발한 이야기가 관객에게 가는 마지막 순간에 채택할 수 있는 은유이어야 했다.
왜 쓰는가? 자신의 내면을 토로하고 싶은 근본적 이유가 없다면 무엇 때문에 고독하게 키보드를 두드리는가? 인류가 존재한 이래 이야기들은 수많은 매체를 갈아타며 진화해 왔지만 한번도 인류는 이야기에 대한 근본적 욕구를 버린 적은 없다. 인간은 지능이 너무 높게 진화돼 스스로가 경험하는 것만으로는 자신에게 일어나는 감정들을 다 해소할 수가 없다. 그래서 비현실로 존재하는 타인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감정들을 소비하고 다시 안전하게 현실로 복귀하고 싶은 것이다. 이야기의 비현실이 현실을 살게 하는 셈이다. 자신의 이야기로 단 한 사람의 삶이라도 바꾸려는 욕망이 없다면 이야기를 쓰는 직업이란 지극히 도구적일 뿐이다. 로버트 매키는 결국 모든 영화 이야기는 ‘인생이란 이런 것이다’라는 자기주장이라고 했다.
밤하늘을 보면 별처럼 많은 이야기가 떠돌고 있다. 문명의 역사는 가치 있는 이야기를 생산하고 감상하며 진보해 온 역사일 수도 있다. 모든 사람의 일상 속에는 고생대로부터 전해진 아름다운 이야기가 화석처럼 숨겨져 있다. 이야기는 창작되는 것이 아니다. 일상에 대한 작가의 섬세한 관찰력과 본질을 꿰뚫는 통찰력으로 ‘발굴’되는 것이다.
육상효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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