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영화·애니

“턱시도 살까말까 고민했는데…”

등록 2013-05-27 15:27수정 2013-05-27 16:39

칸 단편 황금종려상 수상한 ‘세이프’의 문병곤 감독

전화기 너머 들려오는 문병곤(30) 감독의 목소리는 들떠있었다. 26일 밤(현지시각) 폐막한 제 66회 칸 국제 영화제에서 영화 <세이프>로 단편경쟁부문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탄 그는 다음날 새벽 4시반까지 이어진 축하모임 중 전화를 받은 터였다. 그는 “전혀 기대를 안하고 있었던 탓에 턱시도도 살까말까 하다가 샀는데 쓸모가 있게 됐다”며 연신 “얼떨떨하다”는 말을 거듭했다.

그의 ‘흥분’엔 충분히 이유가 있다. <세이프>의 수상은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와 김기덕 감독의 <뫼비우스> 등이 완성도가 충분치 않다는 이유로 칸 영화제 장편 부문에 출품을 고사하면서, 국내 영화계의 관심과 주목도가 낮아진 가운데 거둔 뜻밖의 성과다. 그동안 김기덕, 이창동, 박찬욱 감독 등이 장편경쟁부문에서 수상을 했고 송일곤 감독의 단편 <소풍>(1999)이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했지만 장·단편을 통틀어 칸 영화제 대상에 해당하는 황금종려상을 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무엇보다 장편영화에 비해 단편에 대한 지원과 관심이 현격히 낮은 국내 현실에서 만들어낸 작품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인정받았다는 점은 주목할만하다. 문 감독은 “돈을 벌어서 더 나은 환경으로 탈출하려 할수록 그 환경에 고착되는 사람들의 현실을 그렸다. 사회적인 함의를 담은 것이 다른 경쟁작들과 비교된 것 같고, 빠른 전개 방식으로 메시지에 힘을 실으려 했던 점이 평가받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세이프>는 불법 게임장 환전소에서 일하는 여대생이 도박에 중독된 사내한테 쫓기는 과정에서, 목숨을 구하려 안전한 곳(safe)을 찾아헤매다 자신의 사무실 금고(safe)안에 스스로를 가둔 뒤 절망하는 모습을 13분짜리 영상으로 압축해 그렸다. 지난해 5월 ‘신영균예술문화재단’의 단편영화 창작지원 작품에 선정될 당시 “평범하지 않은 현실을 냉철하게 관찰하는 것만으로 영화적 소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줬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두운 궁지에 몰리는 사람들의 현실을 극적 긴장감을 더해 날카롭게 꼬집었다”는 평가를 들었다.

이번 수상은 한국단편의 힘을 보여준 동시에 현주소를 드러냈다. <세이프>에 들어간 총제작비는 800만원에 불과하고, 그나마 신영균재단 지원비를 뺀 300만원은 문 감독 자비로 충당했다. 실제 촬영은 10여명의 스태프를 동원해 4일 만에 이뤄졌다. 영화에 필요한 최소한의 통제도 없이 일반인들이 지나다니는 지하주차장에서 대부분 장면을 찍어야 했다. 문 감독은 “단편영화가 여유로운 환경에서 제작될 수는 없는 게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라면서도 “비용과 시간에 대한 제약으로 영화 전체 화면이 사실상 한 공간에서 구성된 점이 아쉽다”고 했다. 그는 “스태프들 인건비를 거의 주지 못한 점이 가장 걸린다. 이 영화는 자기 희생을 했던 스태프들 덕분에 만들어졌다”고 공을 돌렸다.

문 감독은 2011년 중앙대 영화학과 졸업작품으로 만든 <불멸의 사나이>가 그해 칸 영화제 비평주간에 초청받는 등 연출한 3편 가운데 2편이 칸에 초대받는 저력을 선보여왔다. 그는 다음달 말까지 프랑스 등 유럽 현지에서 영화 관련 경험을 쌓은 뒤, 국내에 귀국해 당분간 차기작 준비에 몰두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한편 올해 칸 영화제 장편부문에서는 튀니지 출신 프랑스 감독 압델라티프 케시시의 <블루 이즈 더 워미스트 컬러>가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동성애를 소재로 두 여성이 강렬한 사랑 뒤 안타까운 이별을 맞는다는 내용을 담아, 심사위원장인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으로부터 “위대한 사랑 이야기”라는 극찬을 받았다. 일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 중국 지아장커 감독이 각각 심사위원상과 각본상을 받는 등 아시아권 영화의 선전도 돋보인다. 또 이란 영화 <과거>의 베레니스 베조가 여우주연상을, 싱가포르 감독 안소니 챈은 <일로 일로>를 통해 황금카메라상을 거머쥐었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화보] 칸에서 박수받은 서른살 젊은 감독 문병곤
[화보] 제66회 칸 국제영화제 영광의 얼굴들

<한겨레 인기기사>

경찰이 타이르기만 한 스토킹범죄…‘호러물’보다 끔찍한 결말
“싸이, 미안해요” 이탈리아 축구팬들 사과
강릉 경포해변 ‘술 반입 금지’ 올 여름에는 안한다
[화보] 비오는 날의 수채화
[화보] 칸 영화제 폐막…영광의 주인공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