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 단편 황금종려상 수상한 ‘세이프’의 문병곤 감독
전화기 너머 들려오는 문병곤(30) 감독의 목소리는 들떠있었다. 26일 밤(현지시각) 폐막한 제 66회 칸 국제 영화제에서 영화 <세이프>로 단편경쟁부문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탄 그는 다음날 새벽 4시반까지 이어진 축하모임 중 전화를 받은 터였다. 그는 “전혀 기대를 안하고 있었던 탓에 턱시도도 살까말까 하다가 샀는데 쓸모가 있게 됐다”며 연신 “얼떨떨하다”는 말을 거듭했다.
그의 ‘흥분’엔 충분히 이유가 있다. <세이프>의 수상은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와 김기덕 감독의 <뫼비우스> 등이 완성도가 충분치 않다는 이유로 칸 영화제 장편 부문에 출품을 고사하면서, 국내 영화계의 관심과 주목도가 낮아진 가운데 거둔 뜻밖의 성과다. 그동안 김기덕, 이창동, 박찬욱 감독 등이 장편경쟁부문에서 수상을 했고 송일곤 감독의 단편 <소풍>(1999)이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했지만 장·단편을 통틀어 칸 영화제 대상에 해당하는 황금종려상을 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무엇보다 장편영화에 비해 단편에 대한 지원과 관심이 현격히 낮은 국내 현실에서 만들어낸 작품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인정받았다는 점은 주목할만하다. 문 감독은 “돈을 벌어서 더 나은 환경으로 탈출하려 할수록 그 환경에 고착되는 사람들의 현실을 그렸다. 사회적인 함의를 담은 것이 다른 경쟁작들과 비교된 것 같고, 빠른 전개 방식으로 메시지에 힘을 실으려 했던 점이 평가받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세이프>는 불법 게임장 환전소에서 일하는 여대생이 도박에 중독된 사내한테 쫓기는 과정에서, 목숨을 구하려 안전한 곳(safe)을 찾아헤매다 자신의 사무실 금고(safe)안에 스스로를 가둔 뒤 절망하는 모습을 13분짜리 영상으로 압축해 그렸다. 지난해 5월 ‘신영균예술문화재단’의 단편영화 창작지원 작품에 선정될 당시 “평범하지 않은 현실을 냉철하게 관찰하는 것만으로 영화적 소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줬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두운 궁지에 몰리는 사람들의 현실을 극적 긴장감을 더해 날카롭게 꼬집었다”는 평가를 들었다.
이번 수상은 한국단편의 힘을 보여준 동시에 현주소를 드러냈다. <세이프>에 들어간 총제작비는 800만원에 불과하고, 그나마 신영균재단 지원비를 뺀 300만원은 문 감독 자비로 충당했다. 실제 촬영은 10여명의 스태프를 동원해 4일 만에 이뤄졌다. 영화에 필요한 최소한의 통제도 없이 일반인들이 지나다니는 지하주차장에서 대부분 장면을 찍어야 했다. 문 감독은 “단편영화가 여유로운 환경에서 제작될 수는 없는 게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라면서도 “비용과 시간에 대한 제약으로 영화 전체 화면이 사실상 한 공간에서 구성된 점이 아쉽다”고 했다. 그는 “스태프들 인건비를 거의 주지 못한 점이 가장 걸린다. 이 영화는 자기 희생을 했던 스태프들 덕분에 만들어졌다”고 공을 돌렸다.
문 감독은 2011년 중앙대 영화학과 졸업작품으로 만든 <불멸의 사나이>가 그해 칸 영화제 비평주간에 초청받는 등 연출한 3편 가운데 2편이 칸에 초대받는 저력을 선보여왔다. 그는 다음달 말까지 프랑스 등 유럽 현지에서 영화 관련 경험을 쌓은 뒤, 국내에 귀국해 당분간 차기작 준비에 몰두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한편 올해 칸 영화제 장편부문에서는 튀니지 출신 프랑스 감독 압델라티프 케시시의 <블루 이즈 더 워미스트 컬러>가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동성애를 소재로 두 여성이 강렬한 사랑 뒤 안타까운 이별을 맞는다는 내용을 담아, 심사위원장인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으로부터 “위대한 사랑 이야기”라는 극찬을 받았다. 일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 중국 지아장커 감독이 각각 심사위원상과 각본상을 받는 등 아시아권 영화의 선전도 돋보인다. 또 이란 영화 <과거>의 베레니스 베조가 여우주연상을, 싱가포르 감독 안소니 챈은 <일로 일로>를 통해 황금카메라상을 거머쥐었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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