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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한국 공포영화는 왜 ‘공포탄’만 쏘게 되었나

등록 2013-06-06 19:56수정 2013-06-07 12:01

(※클릭하면 이미지가 커집니다.)
[문화‘랑’]영화

‘여고괴담’ ‘장화, 홍련’ 이후 침체기
할리우드는 부단한 진화로 입지 굳혀
베껴먹기·충격요법 의존 벗어나야
1998년 <여고괴담>이 등장했을 때, 한국 공포영화의 미래는 창창할 것만 같았다. 부드럽고 따뜻한, 곱고 착한 것들로만 가득해야 할 ‘여고’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괴담. 그건 한국 사회를 오랫동안 지배했던 ‘폭력’의 현신이었다. 가장 현실적인 두려움을 초자연적인 귀신이라는 존재를 통해 풀어낸 <여고괴담>은 이후 <가위> <알포인트> <장화, 홍련> 등으로 이어지며 우리 사회의 일상적인 ‘공포’가 얼마나 심각하고 뿌리 깊은지 드러냈다.

하지만 관객 314만명을 동원한 <장화, 홍련>(2003) 이후 한국 공포영화는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매년 3~4편의 공포영화가 개봉하고 그중 한두 편 정도는 흥행에 성공했다. 여름이면 공포영화 하나 정도는 봐 주는 충성도 높은 관객들도 생겨난 것 같았다. 하지만 <링>과 <주온> 등에 나오는 일본 귀신을 적당히 베끼고, 오로지 깜짝 놀라는 충격 효과에만 의존했던 공포영화만 양산되면서 관객들은 지쳐갔다. 결국 2007년 <전설의 고향> <해부학교실> <므이> <기담> <두사람이다>가 모두 외면받으면서 한국 공포영화는 몰락했다.

그 와중에 2008년 개봉한 <고사: 피의 중간고사>가 기이한 성공을 거두었다. 전년의 참패로 공포영화가 한 편도 제작되지 않았던 틈새를 노리고, 한 달 준비하여 한 달 찍고, 한 달 후반작업으로 개봉한 <고사>가 놀랍게도 관객을 끌었다. 한국에서 공포영화를 즐기는 주요 관객이 10대 여학생들이라는 점을 노려, 그들이 가장 좋아하면서도 무서워하는 ‘학교’를 배경으로 깜짝쇼를 펼친 영화가 <고사>였다. 논리도 없고, 진정한 공포도 없는 졸작이지만 절묘하게 타깃의 요구를 노리고 만들어진 영화. 이후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현실의 지옥을 그려낸 <불신지옥>, 구조적으로는 파탄지경이었지만 참신했던 <화이트: 저주의 멜로디> 등이 있었고 작년에는 <미확인동영상>과 옴니버스 영화 <무서운 이야기>가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다. 한국 공포영화는 그야말로 아슬아슬하게 명맥을 유지해 온 것이다.

할리우드에서는 이미 확고한 대중 장르로서 자리잡은 공포영화가 왜 한국에서는 이토록 지지부진한 것일까. 할리우드 공포영화의 역사는 호화롭다. <드라큘라> <프랑켄슈타인> 등 고딕 소설의 영화화로 출발한 공포영화는 변종 괴물과 외계인 침공 등 다양한 하위 장르로 뻗어나가다가 앨프리드 히치콕의 <사이코>와 윌리엄 프리드킨의 <엑소시스트>로 빅뱅을 일으킨다. <사이코>는 연쇄살인마와 사이코패스가 등장하는 ‘난도질 영화’를 예고했고, <엑소시스트>는 70년대의 오컬트 붐을 타고 악마주의와 종말의 공포를 부추겼다. 청춘영화와 난도질 영화를 결합한 <스크림>, 고어영화의 신기원을 연 <쏘우>, 가짜 다큐멘터리 <블레어 위치> 등 세기말의 공포영화는 더욱더 대중과 가까워졌다. 그리고 21세기에 이르자 공포영화의 주요 캐릭터인 뱀파이어, 늑대인간 심지어 좀비와 사이코패스까지도 로맨스의 주인공으로 승격한다. 외부에서 온 미지의 존재들이, 이제는 우리의 친근한 이웃이 되어버린 것이다.

기예르모 델 토로의 <판의 미로>와 웨스 크레이븐이 <뉴 나이트메어>에서 역설하듯, 공포는 인류의 근원부터 시작된 상상력이다. 태곳적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신화와 전설 속에 존재하던 악마와 괴물들이 과학문명이 지배하는 현대에서 새로운 존재, 즉 뱀파이어와 프랑켄슈타인의 괴물과 외계인으로 모습을 바꾸었다. 민담과 전설로 이어지던 무서운 이야기들이 이제는 공포영화와 소설 그리고 원형적 형태의 ‘도시 괴담’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올해 2편이 만들어진 <무서운 이야기> 시리즈는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공포의 형식이기도 하다. 일본 역시 90년대 말부터 ‘실화 공포’ 붐이 일면서 <신 미미부쿠로> <정말로 있었던 무서운 이야기> 등이 실화 소설, 드라마, 영화로 이어지면서 큰 인기를 끌었다.

다시 한번 궁금해진다. 그렇다면 한국의 공포영화는 결국 ‘괴담’을 벗어날 수는 없는 것일까? 서구의 공포영화는 충성도가 강한 마니아를 거느리고 있다. 그러면서 대중은 <파라노말 액티비티>류의 현실감 있는 공포나 액션영화로 변신한 좀비영화를 즐기고 있다. 90년대까지만 해도 마니악한 장르였던 좀비영화가 화려하게 변신한 것처럼 소수가 즐기던 이야기와 표현도 흔히 주류로 흡수되고 변형된다. 외국 공포물을 조악하게 베끼거나 ‘괴담’을 어설프게 영상화하는 데서 멈추는 한국 공포영화가 많은 것은, 다양한 스펙트럼의 공포를 탐구하기보다는 안일하게 공식을 답습하거나 오로지 충격 효과만을 공포라 생각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무서운 이야기> 1, 2편에서 ‘앰뷸런스’와 ‘탈출’ 하나씩을 건졌고, 매년 공포영화가 꾸준히 만들어진다는 점에서 희망을 갖는다. 수많은 ‘공포’가 상존하는 한국에서, 그 두려움을 탁월하게 형상화하는 공포영화가 언젠가는 반드시 나올 테니까.

글 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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