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라진 감정의 진동 클로즈업-허진호 감독 ’외출’
허진호 감독의 신작 <외출>은 전작 <8월의 크리스마스>, <봄날은 간다>보다 10도 정도 높은 체온을 지녔다. 남녀주인공의 처지가 전작들보다 위태롭고 카메라의 시선도 전작들보다 두 인물에게 훨씬 바짝 다가 앉는다. 물론 침묵과 고정에서 미세한 감정의 떨림을 포착하는 허진호 감독의 스타일이 크게 바뀌지는 않았지만 <외출>의 남녀는 전작들의 주인공들보다 더 많이 눈물을 흘린다. 머뭇거림의 느낌은 전보다 훨씬 줄었다. 감정 포착하는 시선
허진호표 스타일 그대로
사랑의 절박함은 한발 더 공연 조명감독인 인수(배용준)와 젊은 주부 서영(손예진)은 강원도 삼척의 병원에서 만난다. 둘 다 자신의 배우자가 교통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졌다. 남은 자의 슬픔을 느끼기도 전에 둘은 사고를 당한 두 사람이 밀월여행을 떠나는 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배신감에 몸을 떤다. “차라리 죽어버리지 그랬니” 아내의 불륜에 구토를 느끼던 인수와 서영은 아무에게도 드러낼 수 없는 모욕감을 공유하면서 점점 사랑에 빠진다. 허진호 감독의 영화는 계절 감각을 빼어나게 담는다.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소도시의 쇠락한 사진관에 쌓이던 낙엽, <봄날은 간다>에서 오랫만에 조우한 두 주인공의 심리를 역설적으로 보여주던 눈부신 봄날의 벚꽃이 그랬다. <외출>에서는 움직이는 차 안에서 바라보는 눈 오는 바깥 풍경이 영화의 분위기를 안내한다. 밖은 어둡고 눈은 와이퍼로 닦아내도 닦아내도 계속 차창을 때리며, 차는 눈길을 위태롭게 달린다. 이 장면은 불안하고 절박한 두 인물의 처지를 드러내 준다. <외출>은 무심하게 흘러가는 시간과 소도시의 정적 속에서 등장인물들의 감정을 서서히 쌓아가는 전작들의 연출방식을 취하지 않는다. 여전히 대사가 적고 등장인물들의 동작도 작지만 카메라는 이들의 감정 속으로 직접 들어가려고 한다. 문제는 훨씬 더 많은 감정의 진폭을 보여주고 있음에도 관객의 가슴까지 전달되기에는 파장이 너무 약하다는 점이다. 두 사람이 무심하게 마주치다가 서로의 배우자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러면서 사랑을 느끼기 시작하는, 평범한 멜로드라마의 수순을 따라 줄거리 중심으로 전개된다. 배우자의 불륜에 구토를 느끼고, 불륜에 빠지는 자신에게 저항하며 사랑을 거부하려는 갈등의 굴곡이 좀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허진호 감독이 자주 사용하는 롱테이크가 <외출>에서는 유달리 많아보이고 한 테이크가 유난히 길게 느껴진다. <외출>은 이 영화를 어떤 ‘프로젝트’로 이해하느냐에 따라 호오가 갈릴 수 있는 영화다. 한류스타 욘사마 프로젝트로 본다면 나쁘지 않을 것같다. 부드러운 헤어스타일에 안경 속의 지적인 눈매, 베드씬에서 보여주는 우람한 근육까지 ‘욘사마’의 트레이드 마크가 이 영화에는 골고루 녹아 있다. 그러나 배우 배용준의 매력과 가능성은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에서 보여준 것에 미치지 못한다. <외출>을 허진호 감독의 세번째 영화로 기대했다면 아쉬운 구석이 더 많이 보일 듯하다. 다만 ‘눈물의 여왕’ 손예진의 성숙한 멜로 연기는 부드럽고 폭신했던 흙 덩어리가 아름다운 도자기로 구워진 듯한 도약을 느끼게 한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사진 블루스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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