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랑’] 듀나의 영화 불평
1953년, <성의>를 보러 극장에 간 11살 마틴 스코세이지의 눈앞에서 엄청난 광경이 펼쳐진다. 스크린 양쪽의 커튼이 점점 옆으로 열리는데, 도대체 멈출 줄을 모르는 것이다! 극장은 시네마스코프로 만들어진 최초의 영화를 상영할 준비를 하고 있었고, 그날의 기억은 그에게 잊을 수 없는 충격으로 남는다.
지금 관객들은 그런 경험을 하지 못한다. 당시 스코세이지가 익숙해져 있던 1.375:1의 아카데미 비율 영화는 거의 만들어지지 않는다. 지금 일반적인 영화의 표준은 1.85:1의 비스타 비율인데, 여기서 시네마스코프로 넘어가는 과정은 이전만큼 과격하지 않다. 둘째, 이제 올바른 비율의 시네마스코프관이 별로 없다. 요새 대부분 멀티플렉스 상영관의 화면 비율은 비스타, 그러니까 1.85:1이다.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상영관들은 괴상하기 짝이 없었다. 새로 지은 대한극장에서 <반지의 제왕: 반지 원정대>를 보고 나온 친구들이 투덜거렸던 것을 기억한다. “어떻게 된 거야? 스코프 비율 영화인데, 영화를 상영할 때 화면이 옆으로 벌어지는 게 아니라 위에서 막이 내려오더라고!” 시네마스코프 와이드 스크린 비율이란 넓고 커다란 화면을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진 발명인데, 오히려 화면이 줄어들다니!
비스타 상영관의 존재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다. 정상적인 극장에서 비스타 영화는 상대적으로 작아 보인다. 비스타 상영관은 양쪽 비율 영화의 길이가 모두 극장 스크린 벽 끝까지 차게 보여주기 때문에 화면을 더 효율적으로 쓰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결국 한쪽의 화면이 작아지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멀티플렉스의 장점이 상영관의 수라면 왜 그들은 보다 많은 시네마스코프관을 짓지 않는 것일까?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시네마스코프관은 비스타관보다 더 많아야 한다. 할리우드에서나 한국에서나 시네마스코프 비율로 만들어지는 대중 영화는 비스타 비율 영화보다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상영관에서 <감시자들> 같은 영화를 틀어줄 때 최적화된 화면으로 볼 수 있는 건 앞에 상영하는 광고뿐이다.
이 문제점은 씨지브이(CGV)에 속한 대다수 극장들이 그나마 시네마스코프 영화를 상영할 때 치던 마스킹 막까지 포기하면서 더 심각해진다. 이제 이들 상영관에서 상영되는 시네마스코프 영화들은 블루레이나 공중파 방영 영화처럼 위아래에 레터박스가 붙어 있는 채 상영된다. 이 뿌연 회색 띠들은 화면이 조금만 어두워져도 스크린 전체를 먹어버린다. 어두워질 때마다 화면 비율이 바뀌는 것이다. 심할 때는 1만원 이상을 치르며 들어가는 영화관이 비디오방이 된 것이다. 과장이 아니다. 지금 씨지브이 비스타관에서 틀어주는 디지털 화면은 일반적인 블루레이 화면보다 특별히 나을 것이 없다. 그나마 영화와 블루레이를 갈라놓았던 경계선을 스스로 포기한 것이다.
얼마 전에 개봉된 스릴러 <더 테러 라이브>는 이런 상황의 슬픈 적응을 보여준다. 이 영화는 1.85:1의 비스타다. 그런데 영화는 레터박스가 붙은 와이드스크린으로 상영되다가 다리가 폭파되는 순간 화면이 ‘위아래로’ 넓어진다. 이러니 궁금해진다. 왜 한국 감독들은 시네마스코프 영화를 만드는 것일까? 그 화면을 제대로 보여주는 상영관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데? 만드는 사람이나 트는 사람이나 이 비율을 극장 화면을 잘라내는 좁은 그림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듀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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