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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그리고 싶은 것’과 8월14일

등록 2013-08-15 19:34

다큐멘터리 영화 <그리고 싶은 것>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심달연 할머니의 증언을 바탕으로 그림책 <꽃할머니>를 제작하는 과정을 그렸다. 사진은 영화의 한 장면. 시네마 달 제공
다큐멘터리 영화 <그리고 싶은 것>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심달연 할머니의 증언을 바탕으로 그림책 <꽃할머니>를 제작하는 과정을 그렸다. 사진은 영화의 한 장면. 시네마 달 제공
[문화‘랑’]영화
<그리고 싶은 것>은 ‘위안부’ 그림책을 만드는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이다. 2007년 고이즈미의 야스쿠니 참배를 계기로 일본 작가들은 평화그림책 프로젝트를 제안한다. 한·중·일 작가들이 평화를 주제로 그림책을 만들어 동시 출판하자는 것이다.

권윤덕 작가는 13살에 ‘위안부’로 끌려갔다가 지금은 압화공예를 하는 심달연 할머니의 증언을 그림책으로 만들기로 하고, 수천장의 그림과 수차례의 한·일 어린이 모니터링을 거쳐 책을 완성한다. 그러나 일본 출간은 무산된다. 2010년 한국에서 먼저 <꽃할머니>가 출간되고, 6개월 뒤 심달연 할머니는 돌아가신다. 2011년 후쿠시마 사태 뒤 급격히 우경화되고 있는 일본에서 출판은 아직 보류중이다.

<그리고 싶은 것>은 ‘위안부’ 문제를 기억하는 방식에 관한 영화이다. 흔히 ‘위안부’ 문제를 다룰 때 빠지기 쉬운 오류가 있다.

첫째, 개인사로 축소시키는 방식이다. 권윤덕이 ‘위안부’를 다루겠다고 하자, 일본 출판업자는 “힘든 일을 겪은 할머니가 용기 있게 살아가는 모습”을 담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권윤덕은 “불쌍한 할머니를 그릴 마음은 없다”고 말한다. 전쟁 중 국가폭력이라는 본질을 도외시한 채, 개인의 아픔으로 사사화하는 일본 출판업자의 인식은 공식적인 사죄와 배상 없이 1995년에 조성한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 국민기금’을 통해 61명의 피해자들에게 개인적으로 위무금을 지급한 일본 정부의 입장과 일치한다.

둘째, 반일 민족주의로 환치하는 방식이다. 한국의 남성 작가와 출판업자는 그림 속에 욱일승천기가 빠져 있음을 지적한다. 권윤덕은 가해자가 일본임을 강조하고 싶지 않다고 답한다. 남성들은 ‘위안부’ 문제를 일본과 조선 간의 민족 문제로 인식하지만, 가해자는 일본만이 아니다. 할머니들이 귀국 후 멸시와 침묵을 강요당하고 청구권마저 박탈당한 것은 한국 사회의 책임이다. 또한 한국전쟁 당시 국군이 ‘위안부’를 운용한 기록도 있으며,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의 성범죄도 많았다. 권윤덕은 일본이 문제가 아니라, 전쟁을 일으키는 국가 권력이 문제임을 아이들에게 짚어준다.

셋째, ‘강제’와 ‘순결’에 함몰되는 방식이다. 일본 쪽이 가장 곤혹해한 장면은 일본군에 의한 강제 납치였다. 일본군의 관여를 인정했던 1993년의 ‘고노 담화’도 일본군에 의한 강제 연행은 부인하였다. 일본인 ‘위안부’의 대다수가 사실상 성매매 종사자였던 것에 반해, 이를 대체했던 조선인 ‘위안부’의 상당수는 알선업자에게 속은 빈곤층 여성들이었다. ‘순결한 소녀의 강제 납치’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빚, 가족에 의한 인신매매, 취업사기 등 경제적 유인을 간과하게 하고, 이는 자발/비자발, 군표지급 유무 등을 따져 성매매였다고 주장하는 일본 우익의 논리에 역으로 말려들 위험이 있다. 이는 마치 성폭력 담론에서 피해자가 얼마나 저항했고 얼마나 순결했는지가 본질이 아니며, 성매매 담론에서 자발/비자발이 본질이 아닌 것과 같다. 본질은 ‘위안부’의 동원과 수송, 위안소의 설치와 운영에 일본군과 정부가 직접 관여했다는 사실이며, 국가에 의한 조직적이고 지속적인 성폭력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권윤덕과 <그리고 싶은 것>도 아직 이 부분은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8월14일은 1991년 김학순 할머니의 최초 증언을 기념하는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이다. ‘위안부’ 문제는 한·일 문제가 아니라, 세계 여성에 대한 전쟁범죄이다. 일본 정부는 인류 앞에 사죄하라.

황진미/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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