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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다큐 몰아보기, 그중에서도 정재은 감독

등록 2013-10-10 20:12

김영진 영화평론가·명지대 교수
김영진 영화평론가·명지대 교수
[문화‘랑’] 김영진의 시네마 즉설

올해 필자는 부산영화제를 찾는 대신에 학교 연구실에서 이비에스(EBS) 국제다큐영화제(EIDF) 상영작 리뷰를 쓰고 있었다. 영화제 기간 동안 극장에서뿐만 아니라 종일 방송으로 다큐멘터리를 트는 이 행사는 어디에도 유례가 없을 것이다. 다른 다큐멘터리 영화제에 비해 이 영화제에서 트는 다큐멘터리들은 상대적으로 설명적이고 전통적인 형식의 작품이 많다. 소재의 특이성과 스토리텔링이 강한 영화들이다. 무엇보다 관객에게 몰랐던 사실을 알려주는 계몽적 배려가 강하다. 언제부터인가 계몽주의는 지식인 사회에서도 터부시되었다. 가르치려 들지 말라, 대중은 그 정도로 어리석지 않다는 태도는 예능감각 과시가 영화제와 같은 고급 문화행사에서도 메인이벤트의 중심이 되는 이 세태에 들어맞을 것이다.

그런데 올해 EIDF 상영작들을 미리 일별하면서 명색이 영화평론가인 나도 참 아는 게 없고 세상엔 알아야 할 게 참 많으며 그 앎에의 갈망과 결핍이 둔중한 홀림을 경험하게 하는 걸 실감하게 됐다. 그중 ‘도시와 건축’ 섹션에 상영되는 건축 관련 다큐멘터리들도 재미있었는데, <얀 겔의 위대한 실험>이란 영화가 특히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덴마크의 도시 공학자 얀 겔이 현대 도시의 개념을, 사람이 살 만한 공간을 어떻게 확보하느냐에 초점을 두고 일궈낸 적지 않은 성과를 역사적으로 추적한 이 다큐멘터리는 코펜하겐과 멜버른과 뉴욕 등의 선진국 대도시가 인간적인 공간을 확보하는 과정과 반대로 다카와 충칭 등에서 여전히 개발도상국 마인드로 파괴되는 공간들을 대조적으로 보여준다. 현대 도시가 인간적인 삶의 가치를 어떻게 망가뜨리는지 굳이 웅변하지 않고도 설득하는 힘이 있었다.

이와 관련해 이 지면에서 추천하고 싶은 한국 다큐멘터리 한 편이 있다. 오는 24일에 개봉하는 정재은 감독의 <말하는 건축 시티:홀>이다. 앞서 <얀 겔의 위대한 실험>과 같은 설명적 다큐멘터리의 설득력을 언급했지만 그에 비해 정재은의 다큐멘터리에는 예술적 자의식이 훨씬 많이 들어가 있다. 정재은이 건축을 소재로 한 영화를 만들면서 영화적 공간을 건축화하는 데 탁월한 재능을 보여준 것은 그의 전작 <말하는 건축가>였다. 그 영화에서 고 정기용 건축가의 철학을 부연하듯이 종종 카메라는 화면에 세심한 조형적 긴장을 불어넣는다. <말하는 건축 시티:홀>은 조금 더 다르다. 말 많았던 서울시 신청사의 건축 과정을 참을성 있게 따라가는 이 영화의 스토리는 한국에서 문화적 가치를 실현시키는 게 얼마나 지난한 일인지 조용히 지켜보며 섣불리 폼을 잡지 않는다. 유걸 건축가가 신청사 콘셉트 디자인의 최종 당선자인데도 설계와 시공 과정에서 체계적으로 배제당한 끝에 건물 마감 단계에 합류해 희미하나마 자신의 아이디어를 힘겹게 반영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카메라는 어느 편도 들지 않는다. 서로 다른 입장에서 최선이라고 믿는 건축가와 실무자, 관료의 충돌 그 자체가 현재의 한국 건축 수준의 축도이다. 여기 잔잔한 감동을 주는 것은 객관적 거리 속에 안타까움을 채우고 심미적 긴장을 불어넣는 정재은의 카메라다. 비슷한 시기에 상영되는 이 다큐멘터리들을 한꺼번에 몰아 보실 행운이 여러분에게 있다.

영화평론가·명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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