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개봉하는 <녹색의자 2013-러브 컨셉츄얼리>는 올해 초 갑작스런 사고로 타계한 박철수 감독의 유작이다. 영화는 2000년 초 이른바 ‘역원조교제’ 사건을 소재로 ‘이들이 진짜 사랑했다면 법적인 처벌이 올바른 것이었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씨네힐 제공
‘녹색의자 2013-러브 컨셉츄얼리’
8년전 전작보다 앞선 얘기 다뤄
8년전 전작보다 앞선 얘기 다뤄
지난 2000년, 32살 미술학원 여성 강사와 고교생 남자 제자의 이른바 ‘역원조교제 사건’이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다. 이 사건은 당시 법원이 여교사한테 실형을 선고하고 사회봉사까지 명령하면서 또 한번 사람들의 입길에 오르내렸다.
5년 뒤 박철수(1948~2013) 감독은 이 사건을 소재로 <녹색의자>라는 영화를 만들어 ‘이들이 진짜 사랑했다면 처벌하는 게 옳은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영화는 그해 베를린국제영화제 파노라마부문과 선댄스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됐다. 당시 박 감독이 “친분이 있던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이 인터넷 뉴스로 이 사건을 접하고 영화로 만들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해 영화화했다”고 밝혀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박 감독은 1979년 영화 <밤이면 내리는 비> 연출로 시작해 <안개기둥>(1986), <접시꽃 당신>(1988), <물 위를 걷는 여자>(1990) 등으로 1980~90년대 대표적인 흥행 감독으로 꼽혔다. 하지만 그는 “자본으로부터 해방되자, 노예가 되고 싶지 않았다”며 독립 장편영화를 만들었다. 요리하는 여자와 거식증에 걸린 여자의 동행을 그린 <삼공일 삼공이>(1995)로 한국 영화로는 처음 전세계에 영화를 배급했고, 이듬해 우리 전통 장례문화가 배경이 된 <학생부군신위>로 몬트리올영화제 최우수예술 공헌상을 수상했다. 또 영화 <봉자>(2000)로 한국 첫 디지털 장편영화를 만드는가 하면, <녹색의자>에서 한국 최초로 3D(입체) 음향을 적용하는 등 늘 도전정신을 잃지 않는 ‘영원한 영화 청년’으로 불렸다.
“스타성에 의존한 배우나 스토리텔링을 강조하고 싶지 않다”며 실험적 성격이 강한 영화를 추구했던 그가 2005년 모처럼 영화계의 주목을 받은 작품이 <녹색의자>였다. 이후 8년여 간 이렇다 할 작품을 내놓지 않았던 박 감독이 야심차게 준비하던 작품이 <녹색의자>를 다시 만든 <녹색의자 2013러브 컨셉츄얼리>(31일 개봉)였다.
하지만 박 감독은 올해 초 이 영화 편집 작업을 마치고 귀가하다가 뜻밖의 교통사고로 갑작스럽게 타계했다. <녹색의자 2013…> 이후에도 <메데이아> <아버지의 모든 것> 등 후속 작품 4편을 준비하며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던 중진 감독의 느닷없는 죽음은 영화계를 더욱 안타깝게 했다.
유작이 된 <녹색의자 2013-러브 컨셉츄얼리>는 실화를 바탕으로 ‘역원조교제’라는 멍에를 쓰기 전까지 여교사 문희(진혜경)와 제자 주원(김도성)이 사랑을 키워가는 과정을 그렸다. 2005년에 만든 <녹색의자>의 프리퀄(전작보다 앞선 얘기를 다루는 속편) 형식이다. 전작은 실형을 살고 나온 여교사와 제자가 사랑을 완성해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였다. 에로티시즘을 다룬 영화에서 ‘프리퀄’이라는 형식이 낯설지만 생전에 늘 “색다름과 파격”을 강조해온 박 감독의 취향이 묻어난다.
홍석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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