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5.08.31 16:26 수정 : 2005.08.31 16:26

세상 끝에서 만난 어지르는 여자 깔끔떠는 남자


<라스트 라이프 라스트 러브>의 첫 장면에 벽을 기어오르는 푸른 도마뱀 한 마리가 나온다. 극중에서 남자 주인공은 <마지막 도마뱀>이라는 책을 읽는다. 잠에서 깨어나 자기가 세상에 살아남은 마지막 도마뱀이란 걸 알게 된 뒤 너무나 외로워 싫어하던 ‘놈’들까지도 그리워하는 도마뱀의 이야기. 지는 해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눌 상대가 아무도 없다면 삶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마지막 도마뱀. <라스트…>는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마지막 도마뱀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타이 방콕의 일본 문화센터에서 도서관 사서로 일하는 일본인 겐지(아사노 다다노부)는 끊임없이 자살을 꿈꾸는 ‘도마뱀’이다. 어느날 퇴근길에 교통사고를 목격하게 되면서 눈앞에서 교통사고로 동생을 잃은 언니 노이(시니타 분야삭)와 마주친다. 겐지는 그날 밤 형을 죽인 야쿠자를 총으로 살해하게 되고, 시체를 집에 숨겨둔 채 노이의 집에서 머물기 시작한다. 타이에 머물지만 타이말이 서툰 일본 남자, 일본행을 꿈꾸지만 일본말이 서툰 타이 여자. 결벽증에 가깝게 깔끔떠는 남자, 집을 쓰레기장처럼 어지르는 여자. 서로 정반대인 듯하지만 ‘마지막 도마뱀’ 처지라는 공통점을 가진 이들은 점점 가까워진다. 하지만 노이가 일본으로 떠나는 날이 다가오고, 막판에는 겐지에게 예기치 못한 사건까지 뒤따른다.

영화를 연출한 펜엑 라타나루앙 감독은 아피찻퐁 위라세타쿤과 함께 당대 타이 영화의 두 선도자로 꼽힌다. 위라세타쿤이 기존 영화 문법을 전복하며 실험을 도발하는 감독이라면, 라타나루앙은 상업영화 영역 안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방식을 시도하는 감독이다. 그는 이 영화에서 두 남녀가 서서히 변화해가는 과정을 절제력 있으면서도 세밀한 시선으로 촘촘히 그려나간다. <중경삼림> <화양연화> 등에서 왕자웨이(왕가위) 감독과 호흡을 맞춰온 크리스토퍼 도일 촬영감독의 영상미도 분위기를 더한다. 아사노 다다노부는 이 영화로 2003년 베니스영화제 비경쟁부문 남우주연상을 탔다. 막판에 야쿠자 킬러로 깜짝 등장하는 <착신아리>의 미이케 다카시 감독을 보는 재미도 있다. 2일 개봉.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사진 ㈜영화랑 제공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