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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복수에도 공감 능력이 필요하다

등록 2013-11-07 20:01

듀나 칼럼리스트
듀나 칼럼리스트
[문화‘랑’] 듀나의 영화 불평
<더 파이브>의 설정에서 지능적인 복수극을 기대했던 건 내 실수였다. 하지만 그래도 설정을 보면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은가? 복수자가 자신의 장기까지 약속해가면서 도와줄 사람 네 명을 모았다는 것은 이미 복수 대상이 상당한 능력의 인물이라 거기에 자신의 힘을 맞추기 위해서이며 이 뒤에는 치밀한 계획이 깔려있다고 믿는 것이 그렇게 이상한가? 단순히 ‘한국 영화’라는 이유만으로 이 모든 기대를 포기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이미 예상하셨겠지만 <더 파이브>는 나의 소소한 희망을 가볍게 즈려 밟고 최악의 길로 간다. 우선 다섯 명의 주인공들은 내가 최근 본 복수자들 중 가장 무능한 일당이다. 그들이 영화 끝까지 복수 대상인 연쇄살인마에게 밀리는 것은 살인마가 대단한 악당이어서가 아니라 그들이 초자연적으로 보일 정도로 바보들이기 때문이다. 이러니 스릴러로서 <더 파이브>는 좋지 않은 의미로 기형적이다. 이 영화가 발산하는 서스펜스는 특수 장애가 있는 아이들을 고속도로에 버려두고 구경하는 것과 비슷한 불쾌감을 유발한다.

하지만 가장 심각한 문제점은 이들의 복수 계획이 복수의 쾌락을 전혀 무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나마 복수의 주체인 김선아의 캐릭터는 살인마를 고문하면서 죽일 생각을 하고 있고 그를 위해 서툰 살인고문 기계를 만드는데, 딸과 남편을 잃고 2년 동안 지옥에서 살아온 사람이 기껏해야 1, 2분이면 끝날 고문에 만족한다? 이건 뭔가 계산 착오가 아닌가?

그런데 이런 싱거운 복수 계획은 <더 파이브>만 그런 게 아니다. 한국에서 만들어지는 복수 관련 이야기는 모두가 이렇게 싱거운 계획을 세우고 있고 결말에 가면 그것도 제대로 못한다. 복수 대상에게 자신이 가한 고통을 되돌려 줄 능력이 없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할 수 있는지도 제대로 상상하지 못한다. 그 때문에 한국의 복수담은 대부분 복수자가 겪는 고통에만 집중하는 피학적인 쇼가 된다.

나는 이런 이유가 공감 능력의 부족 때문이라고 본다. 한마디로 이 나라의 복수자들은 가해자가 어떻게 해야 고통을 겪는지 상상하지 못한다. 그들이 알고 있는 건 그들 자신이 겪는 고통뿐이다. 당연히 그들의 복수는 용두사미로 시시하게 끝난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우린 굉장히 잔인한 사람들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학교와 직장의 집단 따돌림으로 목숨을 잃고, 그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주변 사람들의 잘 계획된 가혹행위로 고통에 시달리며 피를 말려가며 죽어간다.

이것은 <더 파이브>의 연쇄살인과 복수처럼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 쉽게 접할 수 있는 일상이다. 그렇게 잔인한 사람들이 왜 정작 제대로 된 고문을 상상하지 못하지?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도 공감 능력이 없다. 자신이 저지르는 일로 피해자가 어떤 일을 겪는지 상상하지 못하는 것이다. 결국 같은 학급 아이를 왕따시켜 자살시키는 아이들이나 제대로 된 복수극을 쓰지 못하는 작가나 같은 문제를 겪고 있다. 남의 마음을 읽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 이것이야말로 모든 것을 고칠 수 있는 시작점이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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