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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8.31 18:33 수정 : 2005.09.01 14:00

6년 벼린 칼날 무협 멜로 베다


이명세(48) 감독이 돌아왔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이후 6년만이다. 더욱 더 스타일리스트가 됐다. 8일 개봉하는 <형사:듀얼리스트>는 한국의 대표적 스타일리스트 감독으로서 그의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낸다. 막연히 조선으로 짐작되는 시대적 풍경은 화려하기 그지없고 춤인듯 희롱인듯 펼쳐지는 검술 액션은 지금까지 한국 액션극에서 볼 수 없었던 정중동의 미학을 보여준다. 지난 30일 아침 이 영화의 기술 시사회 직후에 이 감독을 만났다.

시시콜콜한것까지 지시하는
‘조잡맨’ 이 좀 너그러워졌다
“시대가 바뀌었잖아요 움직임과 리듬만으로
끝까지 밀어붙일까 했는데…
긴 공백 부담스럽다
한국 관객 반응도 궁금하고”

“대사없이 움직임과 리듬, 편집만으로 작품을 완성해보고 싶었다”는 게 <형사>를 시작할 때, 실은 오래 전 영화를 시작할 때부터 이명세 감독의 꿈이었다. “영화는 무엇인가, 다른 매체가 아닌 영화만이 할 수 있는 게 뭔가 하는 생각을 늘 해요. 이번에 움직임과 소리만으로 한번 끝까지 밀어붙여볼까 생각했는데 모두 말렸죠(웃음).” 아닌 게 아니라 <형사>는 대사가 매우 적은 영화다. 특히 남자 주인공 슬픈 눈(강동원)의 대사는 단 세 마디. 대신 배우들의 움직임이 훨씬 더 많은 이야기를 한다. 그가 <형사>를 ‘액션영화’가 아닌 “영화액션”으로 표현하는 이유다. “액션에 감정을 불어넣는 것이 아니라 액션으로 감정을 표현하고자 했어요. 이를테면 남순(하지원)과 슬픈 눈이 처음 대결하는 돌담길 액션신은 첫사랑의 설렘, 데이트에서 처음 손을 잡을 때의 긴장감 같은 걸 드러내려고 했죠.”

연기도 미장센의 일부라고 생각하는 이 감독의 연기지도는 꼼꼼하기로 ‘악명’높다. 배우들의 걸음 숫자에서 고개를 돌리는 각도까지 계산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첫사랑>에서는 배우 조민기가 커피를 젓는 숟가락의 방향까지 지시했을 정도다. 이 감독의 자칭 별명은 ‘조잡맨’. 그런데 의외로 액션이 전면으로 드러나는 <형사>에서는 전보다 배우들에게 많은 부분을 열어줬다. “시대가 바뀌었으니까(웃음). 전작들보다 주연배우 나이가 많이 어려진 건데 이번에는 배우들 이야기도 많이 듣고 한번 해봐라는 식으로 갔어요. 편하고 좋던데요.”

“왜 사극에서는 늘 상투머리에 흰 도포를 입어야 하는 거지?”라는 질문으로부터 <형사>의 독창적이고 화려한 무대와 의상이 탄생했다. 고증을 배제했다기보다 고정관념을 배제했다는 표현이 더 적합할 듯하다. “조감독을 했던 <황진이>에서 장미희씨에게 장옷을 씌우지 않고 입혔어요. 엄연히 소매가 있는 옷인데 사극에서는 언제나 머리에 뒤집어 쓰고 나오잖아요. 그런 고정관념과 싸우는 게 영화의 의미이기도 하지요.” 사실 이명세 감독을 스타일리스트라고 부르는 건 그가 관습적인 풍경의 연출을 거부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의 사랑 나의 신부> 때 유영길 촬영감독님이 못 찍겠다고 촬영을 거부한 적이 있어요. 방안 세트는 알록달록하고 배우 옷도 노랗고 뭔가 비현실적이라는 거였죠. 두시간 동안 신경전을 벌이다가 책임질 수 있겠냐 확답을 받은 뒤 촬영을 재개했죠. 러쉬 필름을 보고서는 안심하더라구요.” <형사>의 초기 촬영 때도 미술팀이 주춤한 적이 있지만 “나에 대해서 대충 알고 있으니까” 거대한 퀼트같은 장터 풍경과 붉은 비단으로 휘감인 연회장 세팅을 일사천리로 진행할 수 있었다. 도무지 한국 사극에서 볼 수 없었던 낯선 의상과 미술을 통해 이 감독이 의도했던 건 뜻밖에도 ‘일상성’의 발견. “우리가 보는 사극의 인물들은 늘 깨끗하게 흰 옷만 입고 있는데 과연 그 당시 사람들이 그렇게 살았을까, 기워 입고 신고 그랬을텐데. 그렇게 이색저색으로 기운 느낌을 영화 전체로 확장시킨 겁니다.”


“대학을 졸업한 느낌”이라고 그는 4년 간의 미국생활을 간명하게 정리했다. “영화도 많이 보고, 공부도 많이 했어요. 딱 4년 채웠으니까 내가 나한테 졸업장을 줬죠.” <인정사정 볼것없다> 개봉을 마치고 그는 토니 스코트 감독의 초청을 받아 미국으로 날아갔다. 할리우드 영화 연출을 염두에 두고 갔지만 과정도 절차도 복잡한 그곳에서 1,2년 만에 연출기회를 잡기는 쉽지 않았을 터이다. “나는 시나리오가 씌어지는 대로 한장씩 받아서 연출을 구상하고 싶지만 그쪽 작가는 완성되기 전에 보여줄 수가 없다고 하고 이런 면에서 좀 답답한 구석도 있었죠.” <디멘션> <크로싱> 등 준비했던 작품이 보류상태이기는 하지만 새 작품 시나리오가 계속 씌어지고 있고 한국이든, 미국이든 바로 연출할 준비가 갖춰지면 세계 시장을 겨냥한 작품을 찍겠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첫 작품 때부터 늘 세계시장을 겨냥했어요. 사람들이 안봐서 그렇지(웃음). 한국 시장에 머물면 안 된다는 게 오래 전부터의 생각이고 무술과 멜로의 결합이라는 <형사>의 소재 선택에도 분명 세계 시장에 대한 고려가 있었지요.” <형사>는 일본에 500만 달러에 선판매됐고, 다음달 초청받은 토론토영화제에서 서구 관객들과 첫만남을 가질 계획이다. 그래도 우선은 한국 관객에 대한 반응이 궁금하고 초조하다. “6년만이니까 부담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우리(제작진)끼리만 좋아하는 게 아닌가 불안하기도 하고. 어제는 지원이가 자기 출연한 영화보면서 운 건 처음이라고 그러던데 워낙 우리가 자뻑팀이예요.(웃음)”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사진 강재훈 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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